일본여행/홋카이도

하코다테의 민낯-홋카이도 여행기 5

나그네 신군 2015. 6. 1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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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늘에서 바라보다. (고료가쿠 전망대-하코다테공원-야치가시라역, 하코다테 시덴)


 짧고 굵었던 에조공화국의 흔적을 지나 나는 마법이 풀린 하코다테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고료가쿠 공원 옆에는 고료가쿠를 전망하는 동시에 하코다테의 주변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가 되어있는데 그곳으로 향하였다. 높이 98미터의 고료가쿠타워는 하코다테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서 인구 27만에 어울리지 않게 나름 큰 규모를 자랑하는 건물이다. 대도시와 달리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기 때문에 정말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한다. 


 렌즈의 이상을 느낀 이후 안경으로 교체하여 성큼 성큼 걸어갔다 가다보니 홋카이도에서만 판다는 야마카와 우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120엔이라는 가격에 판매가 되고 있었는데 (토카츠 우유를 비롯한 다른 우유에 비해 비싸긴 했다.) 이 때 아니면 마실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선도 유지에 엄청난 신경을 쓰는 우유로 홋카이도에서도 파는 곳이 많지 않은 우유에 패트병이나 우유팩이 아닌 우유병에 들어있는 우유라 보존에도 상당히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냉큼 우유를 사다들고 마시는데, 여태까지 마셔보지 못했던 맛이었다. 우유의 맛이 거의 손실되지 않은 풍부한 지방과 구수함이 느껴지는 것이 홋카이도의 신선함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매표소에서 840엔을 주고 티켓을 샀다. 어찌나 친절한지 어느나라에서 왔냐고 물어 본 뒤 한국이라 하자 한국어 팜플렛을 쥐어줬다. 엘레베이터 안내양의 도움을 받아 엘레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도중 엘레베이터 안내양이 고료가쿠전망대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하는데 마치 성우가 말하듯 나긋나긋하면서 청량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데 귀에 쏙쏙 들어왔다. 순간 전화번호라도 받고 싶은 충동이 있었지만 사정상 그럴 수 없었다. 


 엘레베이터가 열리자 하코다테의 민낯이 펼쳐졌다. 어제와는 다른 광경, 신데렐라가 마법에서 풀렸을 때 누추한 모습이었지만 하코다테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지난 날에 있던 곳과 반대편에서 또 하나의 내가 마주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앞으로는 바다 더 멀리에는 츠가루해협 너머 아오모리까지 보였다. 뒤를 돌아보니 광활한 산들이 펼쳐져 대자연과 도시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수묵화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듯한 모습이었다. 


맞은편이 하코다테 산, 뒤에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아오모리현-2015년 6월 5일 고료가쿠 타워. 


 많은 전망대를 다녀봤지만 하코다테의 풍경은 다른 곳과는 사뭇 달랐다. 도쿄도청의 끝없는 도심도, 고베타워의 바닷가, 모리타워가 보여준 도쿄 야경, 우메다 스카이빌딩이 보여줬던 오사카의 모습 어찌보면 다 비슷하게 보였지만 하코다테는 호리병 모양의 특이한 지형이 보다 미학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바다를 등진 산의 위엄과 해협과 해협사이 그리고 내해와 내해 사이에 걸친 풍경은 과거 통영에서 봤던 다도해의 풍경과 비슷하였다.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고 있는 산, 사이사이로 보이는 바다, 마치 하코다테라는 재미있는 축제의 장을 구경하는 구경꾼들과 같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이었다. 키가 작은 사람은 까치발을 들고 보고 한 사람은 덩치가 커서 앞에 사람의 키와 상관없이 내려다보고 있고 어떤 사람은 일찍 도착하여 먼저 자리를 잡고서 편하게 보는 사람도 있고 혹자는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사장이 자주 마시는 맥주


 고료가쿠공원을 떠나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하였다. 주변에 마땅한 밥집도 없고 시간도 어중간 하여 하코다테 어시장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하코다테 어시장에는 하코다테비루관 이라는 맥주 전문집이 있는데 여기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사장이 자주 마시는 맥주'이다. 멀리까지 왔는데 특별한 것을 먹어야겠다는 생각 뿐 다시 전차에 몸을 싣고 하코다테어시장으로 향하였다. 


 전차에 몸을 싣고서 이동하면서 느낀 것은 의외로 하코다테가 큰 도시라는 것이다. 인구에 걸맞지 않게 상당히 도시 자체가 컸는데 한국과의 차이라면 한국 같은 경우 워낙 나라가 좁다보니 인구가 상당히 밀집된 형태를 지니고 있고 아파트를 비롯한 고밀도 건물의 조성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같은 경우 역시 거주가 가능한 곳이 그렇게 많은 나라는 아니지만 한국보다 토지는 넓어 고밀도 건물이 많은 편은 아니다. 더군다나 홋카이도는 남한의 3분의 2면적인 주제에 인구는 고작 500만에 불과하다. 당연히 시가지가 넓을 수 밖에 없다. 


모든 것이 아기자기한 일본답게 전차도 역시 아기자기 하다.-2015년 6월 5일 고료가쿠코엔마에


 하코다테오우이치바(하코다테어시장)에 내려 골목길을 지나 하코다테비루관에 도착하였다. 근데 여기 가격이 좀 나간다. 나름 동네에서 고급 레스토랑에 속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나는 여기서 먹을 건 먹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과거 아르바이트를 하여 돈을 모아 쓰던 때와 달리 지금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나름 모아둔 돈도 있고 계좌에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먹기 위해 지르는 것이 답인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커다란 맥주 양조장이 보였고 안에는 큰 홀이 있었다. 커다란 맥주 양조장을 보니 왠지 신선하고 맛있는 맥주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부에 있는 홀은 나의 느낌과는 다소 이질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나는 노량진에서 회를 떠먹고 동네에 널린 라멘을 먹고 종로에서 고갈비를 구워먹거나 회전초밥집에서 싸구려 네타가 얹여진 초밥을 먹을 사람이지만 여기 그냥 봐서는 상당히 괜찮은 레스토랑이었다. 물론 뭐 아주 비싸거나 초고급 와규로 만든 스테이크가 나오는 집은 아니지만 당장 봤을 때는 한국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 였다. 


 말했다시피 하코다테에서 유명한 것은 털게와 오징어이다. 털게는 아침에 먹었으니 이번 차례는 바로 오징어! 사실 다른 메뉴와 다소 고민을 하였지만 오징어회를 먹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본에서 경험해봤을 때 왠만한 식당은 거진 다 음식이 평타 이상은 해줬기 때문에 과감하게 익힌 것이 아닌 오징어회를 주문하였다. 또한 맥주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한 '사장이 자주 마시는 맥주'를 주문하였다. 참고로 오징어회는 소비세 8%를 제외하고 800엔, 맥주는 700엔 정도 하였다. 


 오징어회가 나왔는데 한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양이 너무 적어보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일본의 문화자체가 작은 것을 여러개 먹는 문화이기는 하지만 내 손바닥 수준 밖에 되지 않는 양은 충분히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맛 자체는 깨나 괜찮았던 것 같다. 보통 한국에서는 활어를 먹지만 일본에서는 선어를 많이 먹는데 이 오징어회 역시 활어는 아니었다. 활어 같은 경우 투명색을 띄고 사후경직이 된지 오래되지 않아 탱탱한데 이 오징어는 하얗고 흐물거렸다. 


 하지만 한국에서 오징어 만큼은 항상 활어나 숙회로 해서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은 입맛에 맞지 않았다. 초장에 찍어먹으면 진짜 맛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초장 따위는 내게 있지 않았다. 확실히 선어는 이런 오징어 같은 것 보다는 광어와 같은 생선이나 조개에 잘 어울린다. 한편 옆자리에는 '사장이 자주 마시는 맥주'가 있었다. 우선 컵부터가 보통 분위기가 아니었다. 마치 금방 맥주 양조장에서 퍼온 듯한 느낌 강력한 맥주의 향이 느껴지는 것이 좋은 맥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운데가 오징어회, 오른쪽이 사장이 자주마시는 맥주-2015년 6월 5일 하코다테비루칸


 맥주를 한모금 들이켰다. 쌉싸름 하면서 맥주 고유의 맛이 느껴졌다. 진정 발효가 된 느낌이랄까? 일반적으로 양산되는 맥주와 달리 탄산 하나 없이 발효된 그 맛을 전달하였다. 쓰디쓰면서 조금 쓰긴 했지만 그 맛은 나의 혀와 머리를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하였다. 이 맥주의 도수는 무려 10도, 대낮에 마시고 나니 조금은 알딸딸해졌다. 참고로 이곳에서는 사장이 자주 마시는 맥주를 포장으로도 판매하는데 일정이 많이 남아 짐만 될 것 같아 구매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후회스러운 일이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


 맛난 맥주를 마시고 하코다테 공원으로 향하였다. 하코다테 공원은 개항 이후 일본이 근대화를 이룩하기 시작한 시점에 생긴 공원으로 오래된 것으로 따지자면 일본에서 세번째 정도 된다고 한다. 과거에는 많은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향락지였으며 놀이공원이자 주말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하코다테 박물관과 구 하코다테 박물관이 있는데 하코다테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전차에 올라 하코다테공원으로 나갔다. 점점 차가 줄어들고 그냥 한적한 어촌 마을같은 느낌이 나기 시작하였다. 언덕에 까지 건물들이 차 있는 것을 보니 부산이 생각나기도 하였다. 전차에 탄 사람들도 거의 없어지기 시작하였고 주변에 식당이나 마트도 거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소박한 어촌의 향기가 무르익을 무렵 하코다테공원앞 정거장에 도착하였다. 관광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던 그곳, 공원에 도착해보니 유치원에서 소풍을 나왔는지 아이들이 모여서 놀고 있었다. 노란색의 유치원 원복, 나도 저렇게 천진난만한 아이들 처럼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렇게 아이들을 등지고 하코다테 박물관으로 걸어 나갔다. 침엽수림이 우거진 숲, 따사로운 햇빛, 불과 1주일 전만해도 사무실에 앉아 인수인계를 하고 거래처를 닥달하고 신입직원을 교육시키고 항상 전화기에는 불이 났었는데 바다 건너 이곳에는 나를 찾는 전화도 없었고 급한 업무 때문에 머리아플 일도 없었다. 적어도 이곳에서 만큼은 난 자유인이었다. 


구 하코다테 박물관 1관의 모습-2015년 6월 5일 하코다테 공원.


 옛 하코다타 박물관의 건물들을 지나 하코다테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하코다테 박물관에는 하코다테의 유래 그리고 홋카이도에 처음 일본인들이 정착하였던 기록들이 남아있었다. 본래 아이누의 땅이었던 홋카이도는 근대에 들어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개척을 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인들의 땅이 되었고 아이누들은 변방으로 쫓겨나거나 차별을 받으며 살았다.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개척이라는 미명아래 벌여왔던 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물론 과거 에도시대때 부터 하코다테는 막부의 권력하에 놓여있었고 지방정권에 통치를 위탁하여 통치를 하고 있어 홋카이도에 있어서 일본인들이 가장 오랜 기간 살아왔던 지역임에는 분명하다. 고료가쿠와 하코다테의 근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들이 있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소위 말하는 일본 본토는 미국의 폭격에 의해 과거의 흔적이 사라진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곳 하코다테는 소련이 남하하기 직전 미국이 전쟁을 끝내버림에 따라 한차례의 피해도 입지 않고 모든 사료들이 보관이 될 수 있었다. 


 참고로 하코다테 박물관 같은 경우 모든 전시물에 대해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비록 주변에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반드시 사진촬영을 하지 않길 바란다. 특히나 예민한 사료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사진촬영으로 인하여 문화재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찍을 수 있다. 


 그런 역사의 강을 건너 하코다테 공원 후문으로 향하였다. 가봤더니 백조도 있고 청둥오리도 있고 다양한 새들이 있었다. 그 곁에서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새를 보며 놀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엄마 엄마 이게 뭐야?"하면서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저런 애를 키워도 모자를 나이가 되었다. 조사(鳥舍)를 지나 후문으로 나갈때 쯤 언덕아래 바다가 보였다. 하코다테의 모양새가 아래가 들어간 항아리 모양, 그렇다 이곳은 바다에서 그리 머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베이에어리어로 갈려던 발길을 돌려 곧장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후문을 나와보니 이렇게 쭉 뻗은길이 마을의 끝까지 연결되어 있었다.-2015년 6월 5일 하코다테 공원 후문


 근데 가다보니 길이 조금 외져보였다. 인도도 없었고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왕복 2차선짜리 도로 뿐, 그냥 발길을 돌릴까 고민하다가 여기까지 온거 그냥 가보자는 심산으로 가봤다. 지난해 포항으로 원정을 가면서 구룡포 해안에 숙소를 잡았었는데 그곳과 가는 길이 같아 무작정 바다가 보이는 곳까지 걸어갔다. 애시당초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해 온 것 아니던가? 이국에서 느끼는 바다의 풍경을 보고자 그렇게 걸어 왔던 것 아닌가?


 도로를 걷고 걸어 수풀을 지나니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보아하니 조그마한 어촌 같아 보였는데 조금 더 걸어가면 백사장이 있는 듯 싶었다. 그러나 정거장에서 너무 멀어지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방파제에 서서 북태평양을 바라 보았다. 구형 코롤라 자동차를 탄 아저씨는 어떤 고민이 많은지 몰라도 담배를 피우며 차안 에서 바다를 조망하고 있었고 한국에서 온 나는 자유를 만끽 하는 동시에 현재 나의 미래를 생각하며 멀리 바다를 지켜 보았다. 

 

탁 트인 바다 저 육지 사이로 나가면 바로 북태평양이다.-2015년 6월 5일 하코다테 야치가시라 


 한 30분 정도 바다를 바라보았다. 넓은 대양은 아니지만 이국에서 보는 바다의 모습은 항상 신기하고 또 다른 느낌이다. 그 안에서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순간들을 복기 하면서 양팔을 벌려 바다내음을 맡으며 바닷바람을 감싸 안았다. 내가 여태까지 쌓아왔던 수 많은 피로들, 그리고 고민들, 그리고 존재의 이유에 대해 아직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동안 상처 받은 것들 남에게 상처를 준 것들 모두 지금 갚아 줄 수는 없겠지만 나의 마음을 이 북태평양 바다에 담아 멀리 퍼트리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지난날 나는 항상 가시 돋힌 삶을 살아왔었다. 포용할 줄 아는 척 하였지만 속으로는 항상 비수를 들고 있었고 타인의 기분 따윈 아랑곳 하지 않고 내 생각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를 먹어서도 그것은 고쳐지지 않아 다른이를 상처주고 또 다시 그 상처를 내가 되로 받고 다시 내 자신을 자책하며 사회부적응 상태로 남아 우울증에 빠졌던 것을 반복해왔다. 최근 몇달 전에도 별 생각없이 누군가를 지적하면서 했던 말이 큰 상처를 줬고 나 역시도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를 지적할 자격조차 되지 않는데 조금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엉뚱한 방향으로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이윽고 그 친구와는 완전히 단절이 되었고 주변의 신망을 다소 잃었으며 내 자신에 대해서도 채찍질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겉으로는 다원화된 사회에 대한 당위성과 다양한 의견 교환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정녕 내 자신은 표리부동했던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다. 여기에 피로한 회사일도, 피로했던 연심도 모두 다 벗어버리고 멀리 떠나 한걸음 뒤에서 나를 비롯한 내 주변에 대해 돌아보고 싶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여기에 온 이유'였던 것이다. 


다음편에서...


이별은 곧 새로운 만남을 이야기 한다라고 생각 했던 적이 있다.-2015년 6월 5일 야치가시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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