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홋카이도

우리가 사랑을 하는 이유-홋카이도 여행기 6

나그네 신군 2015. 6. 24.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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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가 사랑을 하는 이유. (쥬지카이-베이에어리어, 하코다테 시덴)

 

 하코다테의 아름다운 바다를 뒤로 한 채 다시 쥬지카이로 향하였다. 외로운 단선에서 다시 복선으로 나뉘는 전차선에 서서 사진을 찍고 다양한 의미들을 생각하였다.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을 하고 교류를 하고 또 우정을 쌓는 행위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한 장면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전차선이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한 의미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하코다테는 요코하마와 같이 근대적 유산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근대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그 지식이 거의 전무하더라도 근대건축을 좋아한다.―이곳에서 수 많은 근대건축물을 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혹자는 어째서 왜 근대건축물을 좋아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근대건축물은 현대건축과 고대건축이 적절하게 조화가 되어 석조와 콘크리트가 어우러져 과거와 현대의 이질감을 만들어내는 모양새를 나타낸다. 물론 혹자는 그러한 근대건축물이 제국주의 정복의 산물이요,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나누는 신분구조의 표식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시대변천의 주역이오 세계가 진화를 해 나가는 연결고리라고 생각을 한다. 

 

근대 건축물은 여행을 하는 우리에게 또 다른 일탈감을 느끼게 해준다.-2010년 9월 7일 요코하마 야마테지역. 


시계의 은하를 건너. 


 쥬지카이에 도착한 전차, 나는 지난밤 올랐던 하코다테 로프웨이를 잠시 본 뒤 베이에어리어에 왔다. 일본의 초기 개항을 한 곳을 둘러보면―나가사키를 제외한 초기 개항지는 다 가본 것 같다.―아카렌가라고 하여 붉은 창고들이 항상 있다. 최근 일본의 트렌드는 이러한 붉은 창고들의 내부를 리모델링 하여 쇼핑몰과 같은 종합 아케이드로 재생하는 사업이 유행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재생사업을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은 물론 근대건축의 재발견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쇼핑을 하는 공간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다. 쇼핑 역시 여행에 있어서 재미를 주는 공간임에는 분명하지만 진열된 상품에 대해 그저 눈요기로만 즐기는 것은 그다지 원치 않는 부분이 있다. 나는 내가 직접 가지고 다녀야하고 그 제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물욕이 많은 사람인데 그저 구경만 한다는 것은 잔인함 그 자체. 그렇게 하여 내부공간에 대한 탐구는 단순하게 하고 재생된 건물에 대해 속으로 분석하면서 근대문물의 향기에 취해있었다. 당시 하코다테항을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신문물들을 보며 그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하면서. 


저 멀리 유람선이 서있다. 과거에는 이 곳에 수 많은 신문물들이 쌓여있었을 것이다.-2015년 6월 5일 하코다테 베이에어리어. 


 아마 당시의 사람들은 하역해서 내려오는 축음기, 그리고 양복, 라디오, 선풍기 등을 보면서 서역의 신기한 신문물에 대하여 동경하였을 것이다. 일본에서 쌀이나 도자기와 같은 동양의 신비가 담긴 물건이 나가면 그 자리를 새로운 문물들이 자리하였을 것이다. 철도가 부설이 되고 시장이 생기고 경제라는 것이 발전하고 화폐경제가 활성화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바로 이 자리에서 경제가 시작이 되었고 제국주의를 향해 경주하는 일본이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근대의 흐름을 따라 근대식 조명들이 설치되어 있는 길들을 걸어 구 하코다테 공회관으로 걸어갔다. 이전에 설명했듯 하코다테 역시 태평양전쟁 당시 피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많은 건축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간토대지진과 도쿄대공습으로 일순간 파괴가 되어버린 일본 수도권이나 간사이 지방과 달리 이곳은 지진조차도 자주 나는 동네가 아니기 때문에 수 많은 근대건축이 붕괴되지 않고 현대에 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이 가능했던 것이다. 


구 하코다테 공회관으로 가는 길-2015년 6월 5일, 스에히로쵸정거장 부근. 


 여기서 럭키삐에로에 대해 다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점심에 오징어회를 먹은 나는 부실한 내용물로 인하여 배고픔을 느끼고 있었다. 요시노야도 마츠야도 없고 롯데리아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곳 하코다테에는 지역의 프렌차이즈가 있는데 바로 이름하여 럭키 삐에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의 드라이브스루 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이곳은 햄버거는 물론 감자튀김, 피자 등을 팔고 있다. 딱히 밥먹을 만한 곳도 보이지 않는 상황, 험상굳은 삐에로 아저씨가 실실 쪼개며 내려다보는 간판 아래 문을 통과하여 이곳의 자랑인 햄버거와 함께 럭키삐에로에서 생산하는 음료수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를 주문하였다. 


 참고로 이곳 럭키삐에로는 특이한 주문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먼저 주문을 하면 주문번호가 적힌 노란색 종이를 준다. 그 다음에 그 곳에 자신이 앉은 테이블 번호를 적고 카운터에 제출을 하면 점원이 알아서 갖다주는데, 일반적인 패스트푸드 시스템에 길들여진 나로써는 나도모르게 매우 능동적이게 움직이려 들었다. 물론 순간적으로 이 시스템이 이해되지 않아 5분동안 멍때린건 덤이다. 


 햄버거를 열어보니 재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반성해라 한국 롯데리아, 니들 알바 교육 어떻게 시키는지 다 안다.―내가 31년간 살아오면서 가장 먹기 힘든 햄버거였다. 재료도 알차고 야채도 많고 치즈 맛도 좋고. 참고로 럭키삐에로의 모든 재료는 홋카이도에서 나오는 재료들로 신선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소고기 패티, 치즈, 빵 모든 것이 홋카이도 산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때문에 가격은 좀 비싼편이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다. 하코다테 여행의 필수코스 맞다 맞어. 



사진은 다음날 하코다타역앞점에서 찍은 사진, 실제로는 베이에어리어점서 먹었다.-2015년 6월 6일 하코다테역앞. 


 구 하코다테공회관은 하코다테 산 중턱에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가는길이 깨나 가파랐다. 언덕길을 오르며 커플이 손을 다소곳하게 잡고서 사진을 찍고 한쪽에서는 나와 같은 외국인들이 단체로 걸어가며 담소를 나누고 따스한 햇볕아래 나타나는 풍광이 마치 수채화속에서 나온 풍경과 같았다. 거리도 아스팔트가 아닌 보도블럭으로 쌓여있어 운치있는 풍경이 너무나도 빛이 나 꼭 껴안아주고 싶었다. 물론 한켠에서는 '나도 여자친구와 함께였다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공회당 앞에 공원에 서서 아까 내가 걸어왔던 길, 그리고 내가 도착하여 받은 감동들을 복기 하였다. 내가 왔던 어제, 그리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오늘, 모든 것이 한눈에 보였다. 탁트인 바다, 홋카이도 끝의 한자락까지 보이는 상쾌함은 내가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때들을 씻겨주는 듯 싶었다. 1500키로 건너 한국에서 쌓아두었던 수 많은 묵은때들, 나에 대한 수 많은 기억들 모든 것들이 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2015년 6월 5일, 구하코다테공회당.


 구 하코다테 공회당은 1910년 9월에 완공이 된 건물로 하코다테의 시민들이 모여 오락을 즐기거나 손님을 맞이하는 등의 일을 하던 곳이다. 본래 하코다테에는 별도의 시민집회소가 있었지만 1907년 대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었고 하코다테의 사람들은 이를 새로 짓고자하여 만든 것이 바로 이 공회당인 것이다. 이후 1911년 다이쇼 일왕이 머문바 있었고 1922년에는 쇼와 일왕이 행차를 하여 숙소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1980년에 들어서 보존수리공사 후 당시의 모습으로 재건 현재는 관광지의 역할을 함을 동시에 콘서트홀로서도 쓰이고 있다. 


 이 건물의 특성이라 하면 근대 건축물이 가진 모든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르네상스 시절의 디자인을 차용한 기둥장식, 근대식 샹데리아는 서울역에 설치된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에 장식되어 있는 고급스러운 쇼파나 의자, 그리고 각종 집기들은 벨에포크로 상징되던 근대 문물의 풍요를 말해주는 듯 싶었다.


 관람을 하다보니 홋카이도 대학교 사학과 학생들이 와서 현지 조사를 하는 듯 싶었는데 주제 자체를 근대화에 대한 주제를 잡았나 보다. 딱히 뭐 내가 옆에서 들을 이유는 없었지만 큐레이터까지 대동하여 설명을 듣고 토론을 하는 것을 보니 학문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직접 느끼고 보고 체험을 해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계속해서 탐구하면서 토론을 하는 정신, '진정으로 자네들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하여 역사학도로서 삶을 살아갈 것이야.'라고 칭찬해주고 싶었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아 바로 그 생각을 접었다. 

 

구 하코다테공회관 이용에 관한 팁.


구 하코다테공회관은 전면에 자동판매기가 있고 반드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하코다테시 북방민족자료관, 하코다테시 문학관, 하코다테시 구영국대사관을 공통으로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이 있는데 최대 840엔까지 지출을 하게 된다. 


참고로 구 하코다테공회관만 관람 할 경우 300엔의 비용이 소모가 된다. 


이어 구 하코다테공회관에는 여성들의 드레스를 빌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20분에 1000엔이며 오전 9시~오후 5시까지 빌릴 수 있다. 


만약 근대시절 무도회의 분위기를 뽑내는 동시에 드레스라도 입고 이국의 감성을 체험하고 싶다면 좋은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구 하코다테 공회관의 모습-2015년 6월 5일 구하코다테공회관


초심에 대하여


 공회관을 보고 난 뒤 하코다테 동방정교회로 향하였다. 가는길에 보니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부터 공회관이나 동방정교회의 사진을 파는 노점상들이 앉아 한산한 길거리를 쓸쓸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하나에 1000엔을 받는 작가부터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기념품을 비싸게 파는 사람까지, 물론 일본에서 만드는 기념품들은 대체적으로 디테일이 다 좋은 편이긴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바가지를 쓰고 사는 느낌이 들어 일절 무관심으로 길을 걸어갔다. 


 내가 사실 멀리까지 나와 교회를 찾은 이유는 일본에서 종교시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도 개신교를 비롯하여 천주교 동방정교회 등 다양한 기독교 종파들이 들어와 있으나 신도수는 매우 적은 편으로 다양한 신들을 모시거나 성인들을 모시는 일본에서 봤을 때 유일신 신앙은 그냥 이 도처에 널린 신이나 성인을 섬기는 것 같아 널리 포교가 되지 못하였다. 물론 신앙인들은 독실한 삶을 살았고 박해를 피해 신앙은 지킨 이들은 키리스탄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으로 발전한 형태도 있어 종교계에서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정적이 감도는 성전, 견학시간을 체크하고 조용히 성전에 들어갔다. 훈련소시절 종교활동 이후로 5년만에 들어온 교회.―당시 논산교회는 침례교였다. 나는 본래 장로교 신자였기 때문에 장로교 교회를 간건 이보다 더 오래전이다.―근대건축물이기도 하고 신도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지 성전이 매우 협소하였다. 내부는 신비한 성스러움이 깃든 듯 정적만이 감돌았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기도를 하였다. 물론 이것은 이세계에 사랑을 알려준 예수님을 위한 기도이지 증명되지 않은 유일신을 위한 기도는 아니었다. 


 정면에는 성상들이 놓여 부활예수를 위시한 그의 제자들과 선지자, 그리고 성인들의 모습들이 있었다. 정 가운데에는 부활하는 예수, 그 아래에는 12제자들과 즐기는 최후의 만찬, 우측에는 승천과 동방의 사도들, 그리고 동방정교회의 성인들이 그려져있고 좌측으로는 동정녀 마리아와 그의 부활을 지켜본 막달레 마리아, 성인 니콜라이를 비롯한 지지자들이 받쳐주어 부활의 찬미가를 올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자그마한 찬송가의 소리, 아시아의 초기교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이 성당은 신성성이 넘쳐 성역이자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공간인 것 같았다. 설령 북한군이 이곳에 오더라도 성스러움에 놀라 모두 개종을 하고 항복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엿다. 그만큼이나 너무나도 조용하였고 이 공간 만큼은 신의 영역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성전은 보수 공사 중-2015년 6월 5일 하코다테 동방정교회. 


 물론 이곳은 하코다테에서 지정한 중요문화재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개축이나 확장은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신자들에 의하여 운영이 되고 있으며 소소한 기념품을 팔고 헌금을 받아 성전유지에 힘쓰는 모습은 어찌보면 대단하면서도 어찌보면 조금은 안타깝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물질만능주의와 외형에 집착하고 있는 한국의 개신교 교회들을 생각했을 때 이처럼 소박하고 성스러운 모습은 너무나도 상반되어 보였다. 


 신자들이 많아야 하고, 부자들이 많이 되어야 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라진채 목사님이 중심이 되어버린 한국의 개신교 교회. 대중적인 교단은 이미 진정어린 반성따윈 잃어버린지 오래이며 확장되지 않은 신자들을 두고서 제로섬 게임을 펼치고 있을 뿐이다. 목자들은 물욕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성서무오설과 근본주의에 빠져 전통문화와 보편적 문화에 대한 반달리즘은 물론 대중문화까지 간섭하여 철저하게 수도원적인 삶을 요구하고 있다. 속세주의, 그리고 세상의 변화와 개혁적 해석에 대해 이단으로 몰아세우고 교인들을 철저하게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성경적인 삶을 살게 만들어 자신들의 지배구조를 보다 탄탄하게 하여 세습해 나가는 악습이 펼쳐지는 이땅의 교회를 보다 초기 교회 그 자체의 흔적이 짙게 남은 곳에서 순수한 신앙의 갈구가 느껴져 내가 가지고 있는 철학적 사유에 대한 해답을 주는 듯 싶었다. 


 신성성이 가득한 공간을 나와 다시 햇빛 가득찬 세계로 나왔다. 다음 행선지인 개신교 교회와 가톨릭 교회를 가기 위해서였다. 사실 이러한 교회들은 도쿄나 요코하마에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견학까지 가능한 경우는 흔치가 않은데 홋카이도에 유독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교회들이 많아 문화재로 지정된 경우가 많고 또한 눈에 잘 띄는 곳에 많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혼자 생각해보았다. 


 가는길, 아까와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그런데 귀여운 여성분이 나에게 팜플렛을 들고 권유를 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네 가게 와서 소프트 아이스크림 좀 드시라고 30% 할인된 쿠폰도 드린다고. 사실 홋카이도의 소프트아이스크림은 어느 곳보다도 환상적인 맛을 자랑한다고 한다. 홋카이도의 벌판에서 맘껏 방목된 젖소들이 만들어 낸 우유는 지방질과 단백질의 비중이 높아 구수하고 부드러운 맛을 자랑한다. 이것으로 만든 소프트아이스크림은 그야 말로 이 지역의 백미, 그러나 내가 아이스크림을 별로 안좋아하는 바람에 이 소프트아이스크림은 먹을일이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너무 추웠다. 

 

하코다테 개신교회의 모습, 하필 대대적인 공사중이었다.-2015년 6월 5일


또 하나의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그러나 항상 여행이란 생각치도 못한 상황에 부딪혀야 재미가 나는 법, 하코다테 개신교회는 공사 중, 가톨릭교회는 견학불가 상황이었다. 곧장 발길을 돌려 구 영국공사관으로 향하였다. 사실 그냥 지나칠까도 싶었지만 장미넝쿨에서 여유를 즐기실 수 있다는 글을 보고서 바로 들어갔다. 입장료는 300엔, 과거 영국공사가 바다 건너 영국을 그리며 집무를 봤을 듯한 장소로 향하였다. 


 구미열강들이 아시아를 삼키려 왔던 역사부터 흑선내항과 하코다테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특히나 여기는 실내에서 분위기에 맞춰 셀카까지 찍을 수 있도록 삼각대까지 마련을 해두었는데 오전내 스마트오토 기능을 사용하면서 배터리 사용량이 상당했던 것이다. 덕분에 카메라 배터리는 숨을 거두어 가고 있었고 삼각대에 휴대폰을 꽂을 수는 없었다.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순간이 모두 허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따뜻한 홍차 한잔을 하고 싶지 않은가?-2015년 6월 5일 구 영국공사관. 


 영국공사관을 내려와 하루를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일본해상자위대 기지를 지나 미도리노시마공원에서 바다를 보며 한바퀴를 돌았다. 사실 진짜 별거 없는 공원이었다. 다만 바다를 보기도 좋았고 커플들이 애정행각을 벌이기도 좋았다. 분명 밤에 오면 별천지가 펼쳐질 것이 뻔한 곳이였다. 석양이 내리쬐는 바다를 하염없이 걸었다. 걷다보니 하코다테의 처음 발길이 닿은 사람들이 지나간 곳도 보이고 오래된 선착장과 산업화기에 지은 창고도 보였다. 


 걸으면 걸을 수록 하코다테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면을 둘러싼 바다, 호리병 모양을 가진 지형, 정갈하면서도 소박한 매력이 살아 있는 도시, 바닷내음을 맡으며 걷다보니 다시 베이에어리어에 도착하였다. 하코다테 특산 사이다를 마실지 말지 잠시 고민하다가 오르골당이 보여 그곳으로 일단 들어갔다. 딱히 살 생각은 없었어도 아름다운 오르골의 선율이 나의 마음을 정화시켜줬다. 물론 며칠전 영화 매드맥스를 봤기 때문에 그 영화가 생각나기도 하였지만 귀엽고 아기자기한 오르골들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내가 알고 있는 여성분들에게 선물을 해줘야겠다 싶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저녁때가 되었다. 해가 점점 기울기 시작하였다. 새벽 4시 30분 나의 아침을 깨웠던 햇님은 이제 내게 작별을 고할 준비를 하였다. 점심때 너무 많이 먹어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았다. 그냥 가다가 편의점에서 주전부리와 도시락을 사들고 가기로 하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들어와 도시락을 먹고, 티비를 켰다. 그리고 다시 외로움에 사묻혔다. 


때론 일상과의 괴리를 통해 새로운 발견을 하기도 한다.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아마 그동안 많이 지쳐있던 모양이다. 내가 바라던 것들을 이루기위해 그리고 새로운 삶을 위해 무리하게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살아왔던 것들에 대하여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이러한 예측 외의 행동이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소원을 이루는 것도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당연한 이야기 이지만―그래서 나는 여로에 나섰고 7박 8일이라는 짧으면서도 긴 시간을 투자하여 바로 이곳 홋카이도에 오게 된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였던 지난 2년간 나는 많은 것들을 소망해왔다. 사랑에 대해 소망하였고 여행에 대해 소망하였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소망하였다. 하지만 세상에 쉽사리 적응을 하지못한 나는 다시금 탈출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집을 떠나고, 내가 있던 나라를 떠나 다른 세계로의 이행, 그것이 바로 자유고 그것이 내안의 진정한 소망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고 있다 지금 이 시간 속에서. 


하코다테에 도착한지도 24시간여가 지났다. 지난밤 느겼던 감동 그리고 나누어주고 싶었던 충동, 앞뒤 없이 편지를 썼던 행동, 도시가 비추는 별빛은 나의 감정을 춤추게 하였고 이내 충동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어쩌면 영원히 미공개로 남을 수 있겠지만 빛이 불게 타오르는 하코다테의 야경 만큼이나 나의 마음 역시 불타올랐기에 그 감정을 참는 다는 것은 내 자신을 속이고 주위를 속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펜을 들었고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펜으로 나에 대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다만 나는 이내 술을 마셨고 횡설수설하는 낯부끄러운 이야기가 되어 다시는 보고싶지 않았다. 물론 버릴 일도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오늘 역시 잊지 않을 것이다. 츠가루 해협에서 다가오는 바다내음, 하코다테 공원에서 느꼈던 여유, 구 하코다테공회관에서 바라본 아리따운 하코다테, 내 얼굴을 깜싸던 해변공원의 바닷바람, 반찍이는 화려한 드레스에서 혼인을 앞둔 순결한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은 하코다테 시내의 모습도,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또 하나의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2015년 6월 5일-하코다테에서. 


다음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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