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그리고 한국축구/suwon bluewings

박건하 그리고 하태균

나그네 신군 2008. 2. 2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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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라는 세월은 강산도 바뀌게 한다고 합니다. 수원삼성 블루윙즈가 창단되었던 1996년 실업축구팀에서 뛰다 신생팀이 창단되자 바로 입단하게 된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상당히 주목을 많이 받았고 파괴력 넘치고 헌신적인 공격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해 신인상을 탔습니다. 그 신인왕은 97년 월드컵 예선에서 많은 활약을 보였고 98년,99년 수원이 2년 연속 우승하는데 큰 공로를 하였습니다. 2001년,2002년 아시아챔프 2연패의 현장에도 역시 그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는 어느날 부터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하게 됩니다. 2004년 수원의 푸른날개에 세번째 별이 달렸을 때 역시 그가 있었습니다. 2005년 수원이 최악의 한해를 보냈을 때 역시 그가 있었습니다. 빈틈이 난 수비에서 코가 내려앉아 마스크를 끼면서 까지 끝까지 고군 분투 했습니다. 하지만 2006년 부터 점점 그의 자리는 좁아져갔습니다. 그는 점점 발이 느려졌고 점프력도 예전만 못해졌습니다. 이내 결국 그는 올해 플레잉 코치로 등록했지만 단 한경기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배번역시 자신이 12시즌동안 달았던 18번이 아닌 신인급 선수들이나 다는 46번 이었습니다.

어느덧 그의 이름 역시 선수가 아닌 코치로 불리웠고 벤치에서 유니폼을 입기보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완전한 은퇴를 앞두고 있고 더이상 연맹의 기록지에 선수로써 이름이 적힐날은 없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일까요? 그가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아주 유능한 공격수 하나가 단국대를 그만두고 수원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 공격수가 유능한지는 몰랐습니다.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공격수는 몇경기 교체 출장나와서는 5-10분동안 가능성만 보여줬고 이탈리아를 무찌른 월드컵 스타에 가려 자리를 잡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선수는 어느날 주전으로 나와서는 꾸준한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득점에 까지 성공하게 됩니다. 이윽고 그는 남들이 라이벌이라 떠들어 대는 경기에서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나드손이나 안정환 박주영등에게만 집중된 스포트라이트 속을 해치고 통렬한 결승골을 넣으면서 상암원정 첫승을 안겨줬던 것입니다. 결승골의 현장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고 패널트킥도 얻어내보고 꾸준히 수비들과 경합해주고 희생해주면서 언제나 우리에게 찬스를 얻게하였습니다. 또 될 수 있으면 자신이 기회를 얻으면 자신이 해결해 보기도 하고 섬세한 볼트래핑으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기도 했습니다.

근데 아쉽게도 부상을 당해서 결국 전력을 이탈하고 말았고 올시즌 더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서운 신인은 수원 선수로써 11년여만에 신인왕을 탔습니다. 바로 그 11년전 신인왕을 탔던 선수가 자신이 계속 몸담아 온 팀에서 은퇴할 때 말이죠. 시들어가는 꽃잎위에 새싹이 돋는 거 마냥 그 빈 자리를 메꾸는 것 같이 말이죠. 아직 그 신인의 나이는 20세, 앞으로 할게 많을 것입니다. 언제나 수원을 위해 몸바쳐 살아왔던 수원 최초의 신인왕 처럼 그도 언제나 수원의 역사에서 살아 숨쉬길 기도해봅니다. 또 자신이 은퇴할 무렵 또 다시 자신을 이을 명 공격수가 지금의 박건하 선수 처럼 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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