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홋카이도

시대의 교차점-홋카이도 여행기 4

나그네 신군 2015. 6. 18.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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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코다테의 민낯 (하코다테역-고료가쿠, 하코다테 시덴)


 아침이 밝았다. 최근에는 보통 서울에서 5시 30분 정도면 해가 뜨기 때문에 나의 신체리듬 역시 거기에 맞춰져 있었다. 지난 날의 피로와 약간의 숙취가 있는 가운데 따가운 햇살이 나의 뺨을 스치고 있어서 금새 일어나고야 말았다. 여기에 여행으로 인한 아드레날린 분비가 넘쳐나는 가운데 티비를 켜고 그냥 일어나버렸다. 몸으로 느끼기에 대충 6시 40분에서 7시 정도라고 느꼈지만 이게 무슨일인가. 시계는 새벽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전에 도쿄에 갔을 때에도 서울보다 30분 정도 해가 빨리 떠서 상당히 애를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여기는 그 보다 더했다. 


 아무래도 그야 말로 동쪽 끝이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으나 (하코다테의 경도는 호주 시드니와 비슷하다. 참고로 시드니는 한국보다 1시간 빠르다.) 내 눈에 비치고 있는 햇빛은 분명 내가 평상시 일어나는 시간의 햇빛이었다. 본래 일정을 시작하는 시간은 8시 30분, 하지만 일찍 일어난 관계로 일정을 체크해보고 일찌감치 방송을 보면서 준비를 시작하였다.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찍은 사진, 이건 사실이다.-2015년 6월 5일 샬롬인 호텔 


 사실 홋카이도에 처음 왔을 적에 도쿄나 오사카를 생각하고 요시노야[각주:1]와 같이 24시간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을 줄 알았다. 하코다테 같은 경우 홋카이도 두번째 세번째 되는 도시이기도 하고 과거에 매우 흥했던 도시이기도 하기 때문에 당연히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밖에 나와보니 그런 환상은 완벽히 깨져버렸다. 하코다테 역에 와 이런저런 사진을 찍으며 보니 마침 하코다테 아침시장 일대에 식당들이 보였다.


 아침시장이 있다는 것은 아침정식을 준비하는 식당이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저곳에서 아침식사를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되는 것이다. 곧장 달려가 메뉴들을 보니, 아침으로 먹기에는 가격이 다소 부담스러워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모처럼 멀리 여행도 왔고 이지역의 특산물을 먹으면 좋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하여 게살연어알 덮밥을 먹었다. 980엔짜리 이 덮밥은 질좋은 하코다테산 털게와 함께 연어알, 그리고 생선이 있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현지의 특산물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확실히 재료들이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하나 하나 맛이 좋았다.-2015년 6월 5일 하코다테시장


Tip. 만약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 싶다면 호텔에 아침식사를 요청하는 방법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절대방어선


 식사를 마친 뒤 버스안내소에 들려 시영전차 1일 승차권을 구입하였다. 버스도 살 것을 권유하였지만 내가 설정한 루트에는 버스를 타고 가는 장소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시영전철 1일권만 구입하였다. 이 시영전철 1일권은 정리권을 뽑을 필요 없이 바로 승차 한 뒤 내릴때 보여주면 된다. 이 안에는 쿠폰은 물론이고 지도까지 들어있어 관광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만약 자신이 현재 국내에서 구입한 가이드북이 있다면 그건 참고만 해두고 일일권에 있는 지도를 보고서 루트를 개척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어제 이어 다시 전차에 올랐다. 차창너머로 보이는 시내 풍경,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듣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었다. 어디로인가 등교를 하고 있는 아이들, 동네 마실을 나가는지 웃음끼 가득한 얼굴로 전차에 오르는 어르신들 하며 과거 시골버스를 탔을 때 탔던 구수한 정겨움을 바다 건너에서 느낄 수 있었다. 서로간의 담소 소풍길에 떠나는 듯한 아이들, 일본을 생각하면 조금은 상막하고 규격에 잡힌 듯한 세상을 생각했고 또 그 동안 접해왔는데 하코다테의 전차 안에서 느낀 감정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멀었다. 


땡땡 전차가 지나갑니다!-2015년 6월 5일 고료가쿠공원마에역. 


 20분정도를 지나 고료가쿠공원마에역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10분 정도를 걸어가면 고료가쿠타워와 고료가쿠공원이 나오는데 처음에 방위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주변에서 조금은 헤매기도 하였다. 하지만 햇빛의 방향과 구글지도를 참고 하여 다시 방향을 잡고 계속 전진해 나갔다. 그런데 이날 렌즈의 착용이 잘못되었나 자꾸만 불편함이 느껴졌다. 햇빛이 따사로워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었는데 자꾸만 눈이 불편해져 여행을 다니는데 너무나도 힘들었다. 


 가다가 잠시 길도 헤매기도 하면서 10분을 걸었나 고료가쿠공원이 보였다. 홋카이도의 역사 그리고 에조공화국과 문호개방, 소위 북방개척이라 불리는 역사의 장소에 한발 다가서게 된 것이다. 바로 고료가쿠공원은 이러한 홋카이도의 역사가 농축된 곳으로 일본 최초의 유럽식으로 지어진 요새이다. 1854년 일본은 페리제독에 의하여 불평등조약에 의한 개항을 하게 되었고 이후 러시아는 시모다, 영국은 하코다테에 나타나면서 굴욕적인 조항을 체결한 뒤 개항을 하게 되었다.


 조약이 이루어진 직후 1857년 유럽의 축성방식을 본딴 고료가쿠의 건설이 시작이 되었다. 1968년에 들어 메이지유신이 시작되었고 구 에도막부의 잔당들은 하코다테로 도망쳐와 에조공화국을 세우고 하코다테를 거점삼아 훗날을 도모하였다. 이후 일왕파의 군대는 하코다테 정벌을 나서게 되었고 약 2달이 넘는 전투 끝에 에도막부의 전사들은 고료가쿠에 배수진을 치고서 버티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고 일왕파에게 진압, 에조공화국은 사라져 성내에 모든 건물은 해체되어 공원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복원사업에 힘쓰면서 과거 하코다테 부청과 같은 건물들을 복원 하였다.(틀린 부분 있으면 지적바랍니다.)복원과 함께 에조공화국 수도이자 막부시대 최후의 보루였던 이곳은 많은 주민들 그리고 관광객에게 사랑받는 곳이 되었다. 미려한 오각형의 별은 25만 제곱미터, 둘레 1.8km, 직경 500m의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벚꽃축제부터 하코다테 축제까지 하코다테의 심장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 해자를 건너면 절대방어선에 진입하게 된다.-2015년 6월 5일 고료가쿠 공원.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떠올리며 고료가쿠를 걸었다. 사실 서남전쟁에 대해서는 조금 아는 수준이고 메이지유신 역시 근왕파가 막부정권을 내리고 꼭두각시가 아닌 왕을 중심으로 한 입헌군주제를 일궈낸 역사라는 것 까지 알았지만 이후 에도막부의 잔당들이 하코다테까지 밀려와 농성을 벌였다는 사실은 하코다테에 오면서 알게 되었다. 


 물론 이들은 근왕파에게 있어서는 그저 괴뢰정부에 불과했겠지만, 막부정권을 끝까지 수호하는 동시에 나름 근대에 가까운―비록 참정권은 군인들 밖에 없었지만―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서방의 힘을 빌려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려고 하였던 계획은 도쿄에서 일본 내의 정부는 오로지 일왕을 위시하는 정부 뿐이라는 선언을 함과 동시에 무효화가 되었고 주력군 까지 잃어가면서 결국 항복을 하게 되었다. 


 현재 하코다테에서 역사적 평가는 구시대에서 신시대로 넘어간 역사의 장이라는 평가이다. 어쨌던 에조공화국의 실체는 그렇게 오래갈 수 없었음은 자명하였고 전일본에서 구시대를 벗어나기 위한 유신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결국 이들은 패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들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제 3자로써 이들이 왜 이런선택을 했는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도쿠가와가 멸문을 겨우 면한 상태, 그리고 떠받을 주군 조차 없는데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역시 문제는 기득권의 상실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그것이 바로 고료가쿠라는 이름의 '절대방어선'이었던 것이다. 


복원된 하코다테 부고쇼의 모습 쭉 뻗은 다다미가 인상깊었다.-2015년 6월 5일 고료가쿠 하코다테 부고쇼 박물관. 



  1. 일본최대의 규동체인으로써 정말 없는 동네가 없는 체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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