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장정 (신치토세공항-미나미치토세역-하코다테, 특급 호쿠토)
동해 바다를 건너고 건너 곧 도착함을 알리는 안전벨트 싸인과 함께 비행기를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일본에 들어오고 난 이후 구름이 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정확히 어느 지점을 지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점점 구름이 가까워져가고 구름층을 통과하였을 때 어느 지점인지 비로소 파악을 할 수 있었다. 바로 도마코마이 상공을 지나 신치토세 공항으로 접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가에는 빗방울이 맺히고 있었고 무언가 많이 추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윽고 구릉지대를 지나면서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이국에 왔음을 실감하였다. 천천히 스로틀을 내리고 날개측에 붙어있는 에어브레이크가 펼쳐지면서 엔진 출력소리가 줄어가고 있었다. 바람이 조금 부는 듯 기체가 다소 흔들렸고 노란색 페인팅이 되어 있는 활주로는 비에 젖어있었다.―재미있는 사실은 최근 비행기를 탈때마다 도착지에는 비가 왔다.―활주로에 강하게 접촉할 것을 예상하였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강하게 착륙을 하지는 않았다.
흐릿한 도마코마이 여기를 지나면 신치토세공항이 보인다.-2015년 6월 4일 도마코마이 상공
이국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공항의 활주로는 유도선이 대부분 하얀색으로 되어 있는데 신치토세공항의 경우는 아예 노란색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연유는 바로 강설로 인하여 노란색으로 되어 있는 것인데, 워낙 눈이 많이 내리는 동네이다보니 하얀색으로 칠할 경우 눈과 혼동이 되어 사고가 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으로 인해 모든 유도선이 노란색으로 되어 있었다. 이 역시 이국이 가진 또 다른 정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드디어 유도로를 지나자 신치토세 공항 국내선 청사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국내선 청사에서 주기를 하고 있는 많은 비행기들, 이 역시 여행자들의 설레임을 안고서 이곳 신치토세에 도착하여 또 다른 설레임을 안고서 또 다른 목적지로 갈 예정일 것이다. 이쪽에 있는 전일본공수 비행기는 오사카를 갈 수도 있고 저쪽에 있는 일본항공 비행기는 하네다로 또 한쪽에 있는 에어도비행기는 왓카나이로 또 한쪽에 있는 스카이마크 비행기는 서울보다도 멀리 있는 오키나와이 나하공항까지 많은 이들의 설레임을 싣어 나를 것이다. 1
도착을 했을 때, 드디어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맞이하는 탑승교의 모습이 보인다.-2015년 6월 4일 신치토세공항
탑승교가 비행기에 접촉을 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조금씩 천천히 천천히 이국의 정서를 만끽하는 사람들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탑승교에 내려 직원들의 인사를 받았을 때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아직 입국허가라는 과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일본을 비롯한 한국에서도 범죄경력이 없는 내가 입국허가를 받지 못할일은 없었다. 얼굴과 지문을 남기고서 상륙허가 스티커가 붙고 여권을 건내 받았을 때 빨리 건물 밖으로 나가 홋카이도의 공기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한적한 신치토세공항 국제선 터미널을 지나 JR신치토세역으로 향하였다. 치토세에는 여전히 비가 조금씩 오고 있었고 밖이 조금은 추울 것 같다는 시간이 들었다. 본래는 공항에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하코다테로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짐도 늦게 나오고 공항 세관에서 다소 지체가 되다보니 식사시간이 늦게 되었다. 입국카드에 호텔이름을 적지 않고 호텔이 있는 주소를 적었는데 과거 도쿄에 갔을때 이런식으로 적었을 때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것이 문제가 되었는지 세관원이 나를 가로 막았다.
물론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내가 일본에 입국했을 때 받는 질문 가운데 가장 많은건 "짐 이게 전부입니까?"였다. 하지만 이번 세관원은 달랐다. 내가 무슨 보따리 장수인 줄 알았나보다.
"입국 목적 어떻게 되십니까?"
"단순한 여행입니다."
"혼자입니까?"
"네 혼자 입니다."
"일본엔 몇번째죠?"
"네번째 입니다."
하지만 세관원의 의심은 끝이 없어 보였다. 옷차림 자체가 딱히 남루하지도 않았고 면바지에 트랙탑 그리고 티셔츠를 입은 나는 누가 봐도 관광객 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주소지가 불분명했던 세관신고서는 끝까지 의심케 만드는 대목같았다.
"어디어디 가십니까?"
"1주일간 하코다테, 왓카나이, 아사히카와, 삿포로 등을 방문합니다."
"아는 분 계세요?"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호텔은 예약해두었습니다."
"짐 한번만 열어주실래요?"
내 가방을 열어보고 난 뒤 모든 의심이 풀렸나보다. 내가 뭔가 문제되는게 있냐고 물으니 문제되는건 없다면서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 하였다. 살며시 불쾌하기도 했지만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나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어쨌던 이번 교훈은 세관신고서에 주소는 항상 호텔이름을 적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와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한대 피웠다. 신치토세공항을 감돌고 있는 흙냄새는 현실로 부터 유리된 내 자신이 느껴지게 하였다. 친숙한 언어가 아닌 어쩌다가 한번씩 쓰는 언어가 들려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보행하는 방향도 다른 세계,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인천보다 춥고 한기가 서려 있는 이곳, 6월의 홋카이도가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물론 따뜻한 햇살을 대신하여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이제야 진정 나의 여정이 시작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뛰었고 살아 있음을 느꼈다.
어쩔 수 없네요.
신치토세공항역 JR미도리노마도구치에 자신만만하게 당도를 하였다. 인천공항에서 받은 바우처를 티켓으로 교환한 뒤 특급열차에 대한 지정석 예약 요청도 동시에 하였다. 시간표는 이전에 작성한 시간표들이 있어 이를 보여주고 쉽사리 해결이 될 줄 알았으나 일본이 한국과 같이 특정 시간을 입력하면 환승하는 곳까지 자동으로 잡히는 이런 시스템으로 오해를 하고 있었지만 일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거기다 최초 출발시간도 오입력을 하는 바람에 그냥 시간표를 작성하지 못한만 되어버렸다. 2
우여곡절 끝에 시간들을 정하여 이야기를 하고 다시 예약 작업을 시작하였다. 나는 이국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하여 모두 창측 좌석을 요청하였다. 물론 어디를 가나 항상 창측에 앉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 나는 주변의 경치를 눈으로 익히고 여로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보다 깊이 느낄 수 있도록 항상 창가자리를 예약하여 다닌다. 물론 단체로 이동할 경우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혼자 다니게 되면 자리의 예약 역시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항공기의 사전좌석지정은 물론 버스나 기차편을 예약할 때도 좌석예약 버튼은 항상 누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코다테 본선은 절대로 녹록치 않았다. 하코다테와 삿포로 간에는 특급 호쿠토와 슈퍼 호쿠토가 운영이 되고 있는데 이들의 운행횟수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각 지역간의 교류가 활발하고 인구 밀집지역이 많은 일본 혼슈 지역과는 달리 홋카이도 같은 경우 삿포로를 제외하고는 인구도 적고 지역간의 교류가 밀접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열차의 운행횟수가 절대적으로 적다. 이렇다는 이야기는 주말의 경우 만석이 될 우려가 많아지는데 아니나다를까 우려는 현실이 되기 시작하였다. 3
물론 바로 당일 하코다테로 향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자리를 못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긴 하였다. 하지만 창구 직원의 "창가자리가 없네요"라는 한마디는 너무나도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한마디 뿐
"어쩔 수 없네요. (仕方ないですね。시카타나이데스네)"
그리고 연이어서 하코다테와 삿포로까지의 연결편을 알아보았다. 비에이에 가기 위해서는 삿포로에서 아사히카와나 왓카나이로 향하는 열차로 갈아 탄 뒤 아사히카와에서 내려 후라노 또는 비에이로 향하는 일반열차를 이용하여 비에이에 가야한다. 하지만 창구 직원의 한마디가 내 가슴을 내리 찍었다.
"만석입니다."
이윽고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다른곳을 예약하는 것을 보는 수 밖에 없었다. 나머지 열차들 삿포로-아사히카와, 아사히카와-왓카나이, 왓카나이-삿포로 등의 노선은 내가 원하는 좌석 모두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하코다테에서 삿포로로 향하는 열차. 그때 기적과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자리 나왔네요. 창가석은 없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걸로 괜찮으시죠?"
"네 그렇습니다!"
정말 우렁차고 기쁜 목소리로 답하였다.
승자의 흔적-2015년 6월 6일 특급 호쿠토 안에서
추천하는 건 뭐죠?
집을 나온지 약 7시간 30분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하였다. 인천공항에서 식사도 하고 비행기에서 삼각김밥도 먹었지만 여행을 하게 되면 워낙 많은 힘을 쓰게 되기 때문에 금방 배가 고파온다. 거기다 예정 했던대로 공항에서 식사도 하지도 못하였으며 너무나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어찌해야할까 싶었다. 하지만 그때 생각난 것이 바로 에키벤(駅弁)신치토세공항에는 역시 생각했던대로 에키벤을 파는 곳이 없어 믿을 건 미나미치토세역 밖에는 없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하코다테본선과 쿠시로본선에서는 차내에서 에키벤을 주문 하거나 예약할 수 있다.―그리고 미나미치토세 역에 당도하여 매의 눈으로 에키벤을 파는 곳을 찾아나섰다. 4
무작정 전진을 외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부스 안에서 에키벤을 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진심으로 속에서 살았다고 외쳤다.―전술했던대로 그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기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부스를 앞에 서자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메뉴가 많다고 하였지만 이렇게 많을 줄이야. 부스를 지키는 주인장께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다양한 도시락을 소개하는데 대체 뭘 먹어야 할지 몰랐다. 바로 이때 일본에서 쓸 수 있는 필살의 말이 있다.
"추천하는 건 뭐죠?"
그리고 뭔가 정체 불명의 도시락을 추천 받아 그것을 구입하였다. 개중에서 가장 비싼거라 나를 속여먹을려고 이러는가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지만 뭐 그럼 어떠려나, 여행을 하다보면 사람이 속된 말로 대인배가 되는 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얼마 후 나를 하코다테까지 데려다 줄 특급 호쿠토 열차가 도착하였다.
1070엔짜리 에키벤, 근데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안에는 키조개, 연어, 닭튀김, 연어알 등이 들어 있다.-2015년 6월 4일 특급 호쿠토.
3시 5분 하코다테로 향하는 열차가 출발하였다. 사실 초행길이다보니 정말 창가에 앉고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옆자리에는 나 정도 나이로 보이는 남자 분이 앉았는데 틈을 통해 창가의 광경을 볼려고 했지만 야구를 너무 많이 좋아하시는지 자꾸만 신문을 보고 계시는 바람에 살포시 비추는 초행길의 모습만 비춰졌을 뿐이다. 너무나도 답답하였다. 특히나 하코다테행 특급열차는 네무로 본선을 통해 하코다테로 연결이 되는데 이 네무로 본선은 바닷가에 인접하여 있어 동해북부선이나 동해남부선에서 느낄 수 있는 춤추는 파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 너무나도 아쉽게 느껴졌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어.
열차는 이제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오락가락하는 것이 하늘이 날 희롱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에 바깥의 풍경을 보지를 못하니 그저 여러가지 생각을 할 뿐이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 그리고 내가 찾아가야하는 답, 명쾌한 해답을 얻기는 어렵겠지만 분명 이곳의 바람과 땅 그리고 풍경이 나를 이끌어주리라 믿었다.
벌써 20살이라는 기억이 머나먼 기억이 되어가고 있었고 성장하지 못한 나는 누군가에게 응석을 부릴 줄만 알았던 기억이 있었다. 어느날부터 사랑은 항상 실패하였고 꿈을 잃은 채 세상의 틈바구니 안에서 톱니바퀴마냥 종속되어 있던 내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하였다. 본래 내가 가진 꿈이 무엇이었을까? 한때 선생님을 꿈꾸기도 하였지만 현실을 택하였고 그 현실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가혹하였다. 그리고 또 다시 바꾸고 바꾸고 어느 날 눈떠보니 온라인마케팅을 하는 사람이 되어 박봉에 시달리며 항상 효율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사랑을 하는 방법 마저 잃어버려 누군가에게 연심이 생기더라도 이 연심을 어떻게 전달해야할지 모르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절대로 로직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수학적 분포나 이성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어떤 것이 과거에 내가 사랑을 이루게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알 수가 없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검색로직이 아니며 더더욱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은 마음을 전달하는 문제부터 또 추후에 생길 수 있는 모든 파장에 대해 면밀하게 계산을 해야하는 문제이다.
3시간이라는 여정, 그리고 내가 서로 대화를 하던 언어와는 다른 언어가 들리는 공간, 모든 이질감은 내가 여기에 온 이유에 대해 보다 명확한 답을 제시해주는 것 같았다. 점과 점을 연결하는 철도 안에서 그동안 내가 가져왔던 인연들, 그리고 미래에 가지게될 인연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가 만들어왔던 수 많은 과오들 역시 떠올랐다. 지금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항상 내가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론이라고 말하기는 뭐하였지만 모든 것은 선으로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나의 인연, 그리고 우리들의 인연, 그리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줄 수도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를 주는 것이 두려웠고 상처를 받는 것이 두려웠다. 그만큼이나 상처를 쉽게 주고 상처를 쉽게 받았던 기억들이 났다. 모든 것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결국은 이런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어.'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2015년 6월 4일 특급 호쿠토.
3편에서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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