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홋카이도

수줍음에 대해.-홋카이도 여행기 3

나그네 신군 2015. 6. 16. 16:24
반응형

4. 신데렐라의 드레스 (하코다테역-하코다테산 전망대, 시영전차)



 드디어 하코다테에 도착을 하였다. 집에서 나온지 11시간만이었다. 조금은 추우리라 예상하였지만 예상을 밖을 벗어난 추위였다. 날씨 예측을 다소 서늘한 수준으로 생각했던 나에게는 비까지 온 뒤 따뜻한 태양마저 가려버린 덕분에 오로지 빠르게 호텔로 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우처에 나와있는 안내에 따르면 호텔은 하코다테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초행길도 모자라 추위까지 엄슴을 하니 가는길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바람은 어찌나 쎄게 불던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캐리어 역시 무겁게만 느껴졌다.―한국의 늦봄 날씨를 예측하고 짐을 쌌지만 보기 좋게 빗나가는 덕분에 무게만 더 나가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물론 츠가루해협 안에 있는 내해라고는 하지만 바다는 바다, 칼바람이 나의 뺨을 스쳐지나가고 약간 따뜻한 날씨나 격한 운동을 할때 체온을 보호해주는 트랙탑은 이러한 칼바람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이때 든 생각은 단 하나, '아 빨리 야상으로 갈아입고 싶다.' 


 거기다 열차안에서 먹은 에키벤은 어느새 소화가 다 되어 나는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며 전진해 나갔다. 그리고 눈 앞에 호텔의 간판이 보이고 마치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가빠르게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진심으로 살 것 같았다. 나는 흡연자이기 때문에 방의 예약 역시 흡연실로 예약을 해두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방이 없어서 금연실로 배정을 했다는 것이다. 노트에 글을 쓴다거나 술을 마실 때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는 나로써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해도 첫날에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계속 되니 샘이나기도 하였다. 여기에 체크인이니 뭐니 하면서 시간도 많이 지체되었다. 곧장 추위에 대비하여 준비한 야상으로 갈아 입고 하코다테산으로 향하였다. 시간을 보아하니 저녁을 먹기에도 애매해보였다. 하지만 확실히 지금 가면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서 멋진 야경이 연출 될터, 곧장 하코다테산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무거운 짐들을 호텔에 풀어놓고 오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머리 속에서는 아이들이 곧잘 부르는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이 노래가 생각났다. 


 하코다테를 생각하면 야경도 있을 것이고 오징어, 어시장 등이 유명하겠지만 이곳의 명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면전차이다. 국내에서는 1968년을 끝으로 부산과 서울에서 운영되던 노면전차가 폐선이 됨으로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최근 들어 신교통 수단으로서 노면전차가 떠오르고 있지만 운영시스템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국내에 다시 도입이 될 경우 하코다테나 삿포로에서 운영되는 형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박물관에서나 보던 노면전차를 보니 너무나도 신기하였다. 이전에 일본 수도권을 여행했을 적에 에노덴의 일부구간이 일반도로 구간이긴 하였지만 하코다테의 전차와 달리 경전철에 가까운 철도이기도 하고 노면 구간 역시 자동차도로와는 철저하게 구분이 되어있어 신호를 같이 기다리는 것과 같은 재미있는 장면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하코다테 같은 경우 도로 한가운데 깔려 있는데다가 별도의 신호를 따르기 보다는 자동차와 같은 신호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물론 하코다테라는 동네 자체가 차가 많은 동네가 아니다 보니―인구가 27만에 불과하며 강원도 춘천시 정도의 인구이다. 다만 도심자체가 고밀도가 아니다보니 교통량은 생각보다 한산하다.―이런식의 운영이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어딘가 모르게 사람의 정이 느껴지는 하코다테 시영전차-2015년 6월 4일 하코다테역 앞. 


하코다테 시영전철 이용 방법.


요금은 210엔이 기본요금, 버스와 마찬가지로 뒤에서 탄 뒤 앞으로 내린다. 한국과 비교를 하자면 거리비례제와 통합요금제가 활성화 되기 이전을 생각해보면 한국 같은 경우 버스를 탈때 미리 선불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거리를 선택하여 탔다고 보면 현재의 일본 같은 경우 후불로 탄다고 생각하면 된다. 


먼저 탑승을 하면 오른쪽에 조그마한 기계 상자 하나가 정리권을 뱉어낸다. 정리권에는 번호가 써있는데 그 번호가 자신이 탄 정류장의 번호라고 생각을 하면 된다. 이어 정리권을 잘 가지고 있다가 하차를 할 때 요금함에 넣고 자신이 해당하는 요금을 내면 끝! 


다만 1000엔을 낼 경우 요금통에 붙어있는 환전기를 이용하여 환전한 후 지불해야한다. 


참고로 여행자들을 위한 하코다테 시덴 1일승차권은 600엔, 시덴+버스 1일 승차권의 경우 1000엔에 판매되고 있으며 하코다테역 앞에 있는 하코다테 버스 안내소에서 판매되고 있다. 


1일 승차권을 이용할 경우에는 날짜가 맞는지 확인 한 후 기관사나 기사에게 보여주면 된다. IC카드 형식일 경우에는 IC카드 넣는 곳에 넣으면 된다. 


 허나 사람은 모든 것을 직접 해봐야 깨닫기 마련이다. 교토 같은 경우 모든 버스가 가격이 같았고 별도의 정리권 같은 것이 없었다. 여기에 다른 지역에서는 대체적으로 도보나 전철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정리권을 낼 때 어떻게 내야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가이드북이든 기행문이든 그냥 현금과 같이 넣으면 된다는데 막상 보니 이를 어쩔 줄 몰라하다 기관사 분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이거 어떻게 넣는 거죠?"


 기관사분께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마치 '이런 것도 모르는 촌뜨기나 지적수준이 의심되는 사람'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먼저 정리권을 넣고 표시된 금액을 확인 한 후 돈을 넣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약 30여초간의 어색함이 흐른 뒤, 쥬지카이역에 내려 하코다테산으로 향하였다. 


"All alone with you"


 이전에 모 커뮤니티 일본여행 카테고리에서 활약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것이 2010년의 일이니 벌써 5년이나 지난 일이 되었다. 당시에 하코다테에는 대한항공 직항편이 운항 중이었는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코다테에 방문하였고 소위 세계 3대 야경이라 불리는 하코다테의 야경이었다. 얼마 전 도쿄에서의 환희에 취해 환각을 앓아오고 있던 내게 하코다테의 야경은 보석과도 같이 빛났다. 이때 나는 이 멋진 야경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같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당시 26살이던 나는 어느덧 31살이 되었다. 물론 사랑하는 연인과 같이 온다던가 하는 그런 로맨틱한 장면은 절대로 연출되지 않았다. 그대신 나혼자 일혈단신으로 수많은 중국인들과 일본인 단체관광객들 사이에 껴서 하코다테 로프웨이에 탑승하였다.―왕복 1200엔, 10% 할인권이 많으니 참고하시라―본래 고소공포증이 있는 관계로 창가에서는 다소 떨어진채 하염없이 산을 올라갔다. 주변이 다소 시끄럽긴 하였지만 어둠 속에 홀로 서서 사람들 사이에서 비춰지는 풍경을 보며 천천히 천천히 꼭 주고 싶은 선물을 향해 올라갔다. 


 산 정상에 오르니 바람 때문에 너무나도 추웠다. 거기다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인하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무래도 하코다테 최대의 명소이다보니 일본의 어디에서 온지는 알 수 없는 중학교 수학여행단 부터 중국인 관광객, 그리고 몇몇 사진가들과 연인들이 모여있었다. 그 엄청난 인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하코다테시를 바라보았다. 


 아직 해가 완전히 넘어가지 않았지만 수많은 색체를 입은 화려한 드레스는 나의 시각세포를 흔들고 시신경을 지나 뇌로 전달되어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화려한 드레스를 뽑내며 내게 춤을 권하는 모습에서 12시가 지나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의 모습이 보였다. 차이라면 신데렐라는 12시에 마법이 풀리고 하코다테의 야경은 새벽 4시에 마법이 풀려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를 보고 나는 하코다테의 야경을 '신데렐라의 드레스'라고 명명하였다.


슬슬 마법이 걸리고 있는 하코다테시내의 모습-2015년 6월 4일 하코다테산 전망대. 


 조금씩 해가 저물어 가고 완연한 어둠이 내리깔기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이를 보고서 부끄러워 홍조를 띄는 세침떼기 소녀의 모습 처럼, 조금씩 조금씩 도심지는 붉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 멋진 야경을 보기위해 11시간, 아니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었다. 당시의 약속은 지키지 못하였지만 이 짧은 시간을 위해 여행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 타오르는 자유에 대한 의지를 꺾고서 긴시간을 기다려 왔다. 


 그리고 이 멋진 야경을 담아 반드시 전해주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카메라를 잠시 접어두고 휴대폰를 꺼내들었다. 멋지게 휴대폰으로 야경을 찍은 뒤 카카오톡을 이용 그녀에게 보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전송버튼을 누르는데 너무나도 망설여졌다. 내가 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어떤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딱히 용건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많이 친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아름다운 사진을 보내준다는 것이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결국 나는 전송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로 어둠이 짙게 깔린 신데렐라의 드레스를 조망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All alone with you' 


어둠이 내린 하코다테의 모습 가날픈 소녀의 모습 같았다.-2015년 6월 4일 하코다테산 전망대


가게를 잘못들어섰군.


 아쉬움 속에서 하코다테산 전망대에서 하산을 하였다. 시간은 8시 30분, 산정이라 워낙 추웠고 남은 것은 배고픔 뿐이었다. 워낙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밥먹는 시간까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에 먹을 곳이 없나 찾아봤지만 쥬지카이 근처에 먹을만한 가게는 발견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역 주변은 나름 번화한 것 같아 다시 하코다테역앞으로 가기로 하였다. 이때는 이미 9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일본은 항상 친절한 것이 가게 앞에 메뉴판을 놓는 가게들이 많다. 적어도 가기 전에 메뉴를 고르고 들어가거나 어떤 음식의 가격이 얼마나 하는지 충분히 알 수가 있어 식사를 소비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저녁때가 되어 마땅히 먹을 곳이 없는 관계로 마침 라멘집이 하나 보였고 간판 앞에 당연히 메뉴판이 보였다. 그리고 호객상을 따라 그대로 들어가 자리에 걸터 앉아 자신만만히 "한명이요!"를 외치고 들어갔다. 


 그런데 아까 입간판에 있던 메뉴들이 도통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술 안주 뿐 어찌된 영문인가 알 수가 없었다. 주인아주머니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라멘은 없습니까?"

"여기 라멘은 없습니다. 라면은 옆가게예요"


 그제서야 깨달았다. 가게에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이곳은 라멘집이 아닌 술집이었다는 것을 알게된 나는 주인장과 나를 데려온 호객상에게 "정말로 죄송합니다!"하고 신속하게 빠져 나왔다. 한국에서도 가끔씩 가게를 잘못 들어섰던 일이 있었는데 여기까지 와서 이럴 줄이야. 덤벙대는 성격은 어딜가나 못말린다. 빠른 속도로 바로 옆가게에 들어가 소유라멘과 생맥주를 시켜 하루를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하코다테 멘야, 도쿄나 오사카에 비해 다소 비쌌던걸로 기억한다. 꼬불면이 특징-2015년 6월 4일. 


너에게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아침일찍 나와 설레임을 안고서 달려왔던 시간들, 하루사이 바뀐 공간의 차이와 이질감은 내가 이국에 와서 이국의 문화를 즐기고 이국의 생활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편의점에 들려 다른언어로 된 맥주와 소주를 사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안주를 구입하여 다시 숙소로 향하였다. 너무나도 정신이 없었던 하루, 아침엔 분명 집에서 샤워를 하고 한국말로 밥을 주문하고 한국말로 나를 위한 선물을 샀었는데 지금은 일본말로 주문을 하고 일본말이 들리는 티비를 보며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때 노트를 꺼내들어 오늘을 정리할려고 하였지만 너무나도 많은 감정들이 넘치는 나머지 노트에 정리를 할 수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가 완전히 하얗게 되어 글을 적는데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다. 거기다 티비까지 방해를 하니 도무지 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대로 티비를 끄고 노트를 펼쳐 약간의 알콜기운이 넘치는 가운데 영원히 내 노트에 남을지도 모르는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너에게"라고 시작되는 편지, 내가 이시간 담고 있는 감정을 담아 일종의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짝사랑에 대한 힘겨움, 그리고 이곳에 단신으로 와 같이 할 수 없다는 감정, 함께 한다면 더 즐거웠을 것이라는 감정, 모든 감정을 쏟아내었다. 다만, 너무나도 오랜만에 쓰는 편지인지 몰라도 나의 감정을 능숙하게 적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너 생각이 나는걸'하면서 편지를 적었다. 영원히 도착할 수 없을지 모르는 그 편지를... 


전차는 느릿느릿 행선지를 향했지만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2015년 6월 4일 하코다테 시영전차 안에서. 


다음편에 이어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