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간토

2009 도쿄여행 제 6일차-요코하마①

나그네 신군 2010. 7. 3. 14:06
반응형

그 동안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다름아닌 바쁘고 귀찮아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두달동안이나 글을 쓰지 않은건 너무 하긴 하지만 너무나도 귀찮았다. 하지만 내 여행의 흔적은 계속해서 남겨야함은 자명하며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조금이나마 많은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의미에서 글을 쓴다.

또한 앞으로 축구관련 리뷰같은 경우는 다시 개시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포커스가 큰 경기 중심으로 진행해보고자 하고 그 동안 하지 않았던 평론 부분도 다시 강화해볼 계획이라. 그럼 지금부터 즐감하시라.

요코하마는 이케부쿠로역에서 쇼난신주쿠를 이용하여 이동하였다. 그 이후 요코하마역에서 네기시선으로 갈아타 이시카와쵸역에서 하차하여 야마테에 당도할 수 있었다. 보통 요코하마역에서 미나토 미라이센을 이용하여 야마테역으로 가는 루트를 많이들 사용하는데 이 루트는 미나토미라이센을 이용하지 않음으로서 요금을 줄여나갈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이케부쿠로역에서 본 한 특급열차, 쇼난신주쿠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사실 중간과정 사진을 잘 안찍는 편이다. 내 머리속에는 이날의 기억이 많지만 아쉽게도 귀차니즘 때문인지 몰라도 사진을 찍지 않았다. 이 모습은 이시카와쵸역에서 내려 야마테 18호관에 들어가기 전에 찍은 모습인데, 멀리 요코하마 베이브릿지와 요코하마 마린타워가 보인다.


야마테 18호관 앞에서 찍은 주변의 모습


이 것이 바로 야마테 18호관의 모습이다. 이 날 한 유치원에서 소풍을 나와 많은 어린아이들이 개항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나도 참 저런 애들 가지면 좋을텐데, 그나저나 중요한건 저 유치원 유치원 교사가 꽤 생긴게 이뻤다 ㅠㅠ


이용시간 안내


여태까지 우선 내부의 모습을 쭉 열거하면서 보여줬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건축물이 여러가지 이후로 보존이 잘 안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에게 있어서 개항이라는 역사는 일본을 변화시킨 원동력이었기도 하지만 무력에 굴복하여 끝내 개항을 하게 된건 치욕의 역사이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 있어서 페리제독의 무력은 일본을 바꾼 역사이고 이후 힘을 얻은 일본은 강화도 앞에서 시위를 하여 인천 개항을 얻어내게 되었다.

이를 통해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확보하였고 아시아 패권국가로서 자리매김하였었다. 물론 미국에게 패전하면서 그 주도권을 잃었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이 치욕은 오히려 일본이 부국강병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던 원인이었으니 엄청난 역사 속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위 사진은 개항당시 요코하마 일대의 모습인데, 지금과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근대사료를 쉽게 구하지 못하는 우리하고는 다소 상반된 모습.


야마테 18호관에 마련된 조형물의 모습


저체적인 모습이다. 멀리 문제의 유치원교사가 보인다 ㅎㅎ


이른바 외교관의 집이다. 이 안에는 당시에 사용되었던 물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당시 일본에 온 서양의 외교관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이 주변 같은 경우는 상당히 부유한 동네임을 알 수 있었는데 과거에 외교관들이 이 곳에 둥지를 틀고 이후에 많은 부유층들이 이 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쭉 내부의 모습을 보여드렸다. 이를 통해 19세기 서양인들이 어떤 양식을 가지고서 살았는지에 대해 추론이 가능하였다. 특히 외국인의 유입시기가 비슷했던 우리나라 역시도 외국인들이 이와 같은 삶을 살지 않았게나라고 추론이 가능한데, 이 당시에는 대체적으로 저런 형태의 집들이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추론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