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언덕길의 아폴론 (비에이-패치워크미치)


 시간이 되어 자전거 대여소로 향하였다. 하지만 9시가 다 되어 감에도 불구하고 가게가 열리지 않아 있던 것이다. 분명 블로그에서는 여름에도 영업을 하는 것 같았는데, 가이드북 같은 경우는 6월에는 자전거 대여가 없다는 뉴앙스의 글을 보고서 큰 불안감이 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된다면 내가 계획했던 것들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여차하면 코인로커에 짐을 맡긴 뒤 도보로 비에이의 패치워크미치를 걸어갈 생각을 하였다. 그래도 혹시라도 9시 정각이 좀 넘은 시간부터 영업이 개시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담배도 펴보고 휴대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운명의 시간, 난 이 일정이 엉키는 순간 내가 가지고 있던 가슴 깊은 곳의 로망이 붕괴가 되는 것이다. 오로지 이 생각 뿐이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 캐리어를 이끌고 대여소를 향했다. 마음 속에 작은 불안감과 함께....


 다행히도 정시가 다소 넘어 문을 열었다. 이름은 <마츠우라 상점>, 이곳 비에이에는 두 곳의 자전거 대여상이 있는데, 이날은 공교롭게도 이 마츠우라 상점 한 곳만 열었던 것이다. 별도의 휴식일을 가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요일이라 그런지 굳게 문을 닫고 있었다. (훗날 확인해보니 타키가와 사이클이라고 한 점포가 더 있었다. 심지어 여긴 7시에 연다)


 가게에 들어서자 인심이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께서 가게를 지키고 계셨다. 가게가 열렸다는 기쁨에 당장이라도 안아주고 싶었지만 외국에 나와 이상한놈으로 낙인 찍히고 싶지는 않아 마음 속에만 담아두기로 하였다. 불안함에서 기쁨으로 바뀌자 비에이의 언덕길을 자전거로 누빈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설레여왔다. 가이드북에 몇장 소개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무지개빛과 초록빛이 지배하는 곳...그곳이 드디어 내 눈 앞에 펼쳐진다니...마치 나의 정신연령이 만 12세 정도의 소년으로 퇴행해버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방문한 첫번째 손님이겠지 후후후. 


-숙소에서 나와 주변을 돌면서...혹시라도 일정이 꼬일까봐 불안했었다. 2015년 6월 7일 비에이


달려라 자전거


 우선 캐리어를 지정된 자리에 맡겨두고 우선 몇시간을 탈지 이야기를 하였다. 사장님께는 2시간에서 3시간가량을 이야기 하였는데, 1시에 출발하는 아사히카와행 열차를 타기 위해 시간을 여유있게 잡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여행계획을 잡을 때 분단위까지 잡는 성격이긴 하지만 패키지 처럼 빡빡하게 정신 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정말 싫었고 이미 지난해 간사이여행을 통해 그런 빡빡한 여행은 결국 실패한 여행으로 귀결됨을 충분히 느꼈었다. 


 탑승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사장님은 어떤 코스를 타고 싶은지 물어왔다. 참고로 비에이에는 두 곳의 자전거 산책 코스가 있는데, 하나는 패치워크 미치이고 하나는 파노라마 미치이다. 파노라마 미치 같은 경우 형형색색의 라벤다가 펼쳐져 있는 언덕이 중심이고 패치워크 미치는 비에이 역 뒷편을 이루고 있는 언덕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자전거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 코스를 도는데 전기자전거로는 2~3시간, 일반자전거로는 3~4시간 가량 소요가 되는데 나같은 경우는 왓카나이로 넘어가는 일정이 있던 관계로 둘다 하기 보다는 가까운 패치워크미치를 선택하였다.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로 자전거, 나는 1초의 지체도 없이 전동자전거를 선택하였다. 일반자전거에 비해 비싼 가격이기는 하지만 일반자전거로 언덕길을 넘는 다는 것은 내가 사이클 선수 수준의 체력을 가졌다거나 심폐지구력이 축구선수급으로 좋은게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여지없는 선택이었다. 


비에이에서 자전거 빌리기


이번에 비에이에서 자전거를 빌리면서 가이드북 때문에 너무 화가나 반드시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가이드북에는 6월 28일 부터 8월 27일까지 한시적으로 빌릴 수 있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다른 블로그에도 나와 있듯 후라노와 마찬가지로 언제 어느 때라도 빌리는 것이 가능하다. 단, 눈이 많이 내리는 동절기에는 빌릴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9시 정도에는 가게를 열며, 내가 자전거를 빌린 마츠우라 점포의 경우 일반자전거의 경우 시간당 200엔, 전동자전거의 경우 시간당 600엔의 요금으로 빌릴 수 있다. 


이 밖에 캐리어를 비롯한 큰 짐이 있을 경우 점포 내에 맡겨둘 수 있으며 요금은 도착 후 정산을 하는데 분 단위로 계산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구간별로 계산을 하니 3시간을 탈 예정이라면 3시간을 쭉 타는 것이 좋다. 


 자전거를 선택한 뒤 간단하게 코스에 대하여 OT를 하였다. 다시 한번 탑승하는 시간을 확인하고 해당하는 지도를 보여주면서 천천히 코스의 특징과 각종 지형지물을 설명해주셨다. 또한 다운힐과 업힐이 많아 교통사고에 주의해야하는 것은 물론 어떤 순서로 가는 것이 제일 좋은지 전달받으니 머리 속에서 어떤 지형지물이 있는지 상상이 될 정도 였다. 


 그리고 자전거를 인수하기 직전 이름을 적을 때, 나보다 앞서 두명의 중국인이 자전거를 빌려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1등이 아니라니, 이것만큼이라도 1등하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이름을 적어갔다. 이름을 적으며 결제에 대해 물었다.


"결제는 언제 하는 거죠?"

"(한국어로)후불!"


순간 말문이 막혀왔다. 분명 이 아저씨 나랑 여지껏 일본어로 떠들었는데......

어찌 됐던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자전거를 인수 받았다. 내가 설명을 듣고 있던 사이 또 다른 분이 출근하여 나에게 자전거를 건내며 간단하게 전동자전거 조작법을 알려준 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겨주셨다. 


"다녀오세요!"

"다녀오겠습니다!"


정말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당시 안내를 받았던 지도와 코스 설명.


City of angel 


 1998년에 개봉했던 니콜라스 케이지와 맥 라이언 주연의 <City of angel>의 예고편은 1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머리 속에 편린으로 남아 있다. 주인공 맥라이언이 자전거를 타고 팔을 활짝 펼치며 자유를 만끽하던 모습은 내게 있어서 너무나도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동시대에 개봉하였던 타이타닉의 「내가 세상의 왕이다!」씬과 더불어서 가장 해보고 싶은 행동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그 시기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세상물정 모르고 덤비던 시기였기에 <City of angel>에서의 장면을 심심하면 따라하였다. 또한 영화 <비트>에서 오토바이를 손 놓고 타던 정우성의 모습도 너무나도 멋져 자전거로 그 기분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19세 영화를 만 13세가 어떻게 봤는지는 절대 묻지 마라) 그러나 분명 내가 사는 곳은 일산신도시라는 도심이었고 외곽에 나와 풀내음을 맡으며 자유를 만끽할 일을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리고 17년 후 나는 일본의 어느 한 시골동네에 찾아와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힘껏 밟았다. 전기 모터의 힘을 받아 마을을 슝슝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잠시 조그마한 건널목이 너무 아기자기 하고 예뻐 서서 간단히 사진을 찍고서 다시 북쪽 비에이를 향해 박차 올라갔다.  


-내 정거장은 대체 어디에....2015년 6월 7일 비에이


 아사히카와와 후라노를 연결해주는 대로를 건너 왼쪽으로 돌자 <비에이쵸(美瑛町)>라고 써진 표지판이 보였다. 이곳부터가 바로 언덕길의 시작, 소년시절에 봤던 맥라이언이 그랬던 것 처럼 언덕길을 힘차게 올라갔다. 전력의 힘을 받은 자전거는 언덕을 어렵지 않게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기어를 내리고 전동자전거의 출력을 올리자 윙윙 모터소리와 빙빙 소리가 나는 자전거 체인의 파열음이 만나면서 보다 경쾌한 자전거 길이 되는 느낌이었다.


 우측통행을 하는 한국과 달리 좌측통행을 하는 것이 영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들 어떠하리, 내 자유를 만끽하고 그녀에게 보낼 환상적인 사진만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올라가던 도중 매우 낯이 익은 단어가 하나 보이는 것 이었다. 다름 아닌 한국식 갈비집, 그러나 폐업한지 오래 된 듯 마당에는 잡풀이 우거저 있었고 인기척이라고는 느끼기 어려웠다. 아마도 수년전 한류열풍이 불던 시절 재일교포나 한국인이 정착하여 운영하던 식당이었으리라. 하지만 일본의 촌락 인구 감소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고 몇몇 소규모 정이나 촌들은 통폐합의 비극을 맞이하였고 이 가게 역시 그런 세상의 풍파를 이겨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언덕을 오르며 펼쳐진 아스파라거스 밭-2015년 9월 7일 비에이


 무언가 을씨년스러움을 느낀 나는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고서 다음 코스로 향해갔다. 핑크색 웨딩하우스 앞 도달하자 지도를 확인하였다. 아까 OT를 받으면서 주요 포인트로 알려준 곳인데, 이 곳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간 뒤 다시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켄과 메리의 포퓰러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신나게 달린 나머지 그만 삼거리를 놓치고야 말았다. 멀리 벌판 위에 우뚝이 서 있는 나무가 바로 '켄과 메리의 포퓰러 나무'였던 것이다. 자전거가 너무 잘 나간다고 무턱대고 밟지 마라 중요한 포인트를 놓칠 수 있다. 


 결국 가다가 U턴을 하여 '켄과 메리의 포퓰러 나무'에 당도하였다. 사실 다른 인터넷홈페이지에서 본 사진에 나온 것 처럼 근접촬영을 하거나 가까이 다가서기는 어려웠다. 친절하게 출입금지라고 써놓은 것은 물론이며 밭 한 가운데 있어서 접근을 할 수 없었다. 특히나 안내문에는 이 나무도 슬슬 수명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나무와 주변 밭에 위해를 가하지 말라고 친절하게 써붙여놨으니 절대로 발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보내야 할 것들...


 '켄과 메리의 포퓰러 나무'가 유명해진 계기는 1972년 닛산 스카이라인 광고 <사랑의 스카이라인>편에 등장하고 나서 부터이다. 1923년 오쿠보 목장의 오쿠보 유조에 의하여 식재된 평범한 포퓰러 나무였지만 광고에 등장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어느덧 비에이를 찾는 이들에겐 반드시 들려야 할 필수 코스가 되었다. 사실 비에이 자전거 하이킹을 하면서 느낀 점은 이들 나무 보다도 넓직한 고원에 자리잡은 밭이 훨씬 더 예쁘다는 사실이었다. 


 일단은 이곳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기로 하였다. 흐린 날씨에 다소 쌀쌀한 날씨였지만 30분 가까이 달리다보니 어느새 더위가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준비한 이온음료를 마시면서 다음 일정을 검토하는 한편 나무와 자전거를 함께 사진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단 한가지, 그녀에게 보내주고 싶어서. 지금은 홀로 왔지만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다. 물론 즉각적으로 보내는 것이 어려운 걸 알기에 그럴 수 없었다. 


-나름 신경 쓴다고 찍었는데, 나무가 너무 컸다....그리고 실제 찍는 포인트는 삼거리 쪽이다. 2015년 6월 7일 비에이

 

 그리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무언가를 버린다는 것, 그리고 무언가를 보내야 한다는 것. 많은 것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지난 1년 6개월간 지냈던 직장생활도, 그리고 어쩌다보니 짝사랑하게된 여인도 이곳에 있지는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을 떠내려보내고 싶은 한 사람만 있었을 뿐이었다. 아침 그리고 조용한 일요일, 자전거를 타고서 이 언덕을 누비는 사람들이 별로 없던 그 시간, 나는 외로이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조금은 눈물이 나기도 하였다. 진짜 내 삶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그리고 내가 바라던 꿈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진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였는지. <타이타닉>의 잭 도슨이 그랬던 것 처럼"나는 세상의 왕이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외로이 자전거를 밟아 올라가던 난, 자신의 사랑을 세상의 중심으로 배웅하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사쿠타로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모든 괴로움을 정리하고 싶었다. 이국에서,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이 살고 나와 의사소통이 100%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 일상과 비일상의 균열을 만들어 비일상이 내 곁에 있어주고 그리고 폐색되었던 내 마음이 다시 열리고 지쳐있던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을 느끼고 싶었다. 집에 돌아가거든, 이 때 가졌던 마음들 그리고 봤던 모든 것들을 내 마음 속에 간직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리라 마음 먹으며 다음 행선지로 달려나갔다. 



-너와 함께 였다면... 2015년 6월 7일 비에이 켄과 메리의 포퓰러나무 근처. 

Posted by 석유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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