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홋카이도

하늘을 달리다2.-홋카이도 여행기.12

나그네 신군 2016. 4. 2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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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변해야 하는 것들...


 '켄과 메리의 포퓰러 나무'를 떠나 세븐스타 나무로 향해갔다. 잠시 눈 앞에서 흘렀던 눈물이 멈추고 다시 눈 앞에 시원한 아스팔트 길이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계속된 오르막길에 조금씩 지치기도 했고, 과거에 비해 떨어진 체력이 너무 아쉽게도 느껴졌다. 분명 충분히 쉬면서 갔다고 생각했지만 30대 초입에 들어선 내 몸은 과거에 비해 확실히 둔탁해진 느낌이었다. 


 사실 그동안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당장의 삶에 집착하여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내가 달리는 이길이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딘가를 자유롭게 누비는 것. 꽉 막힌 사무실 보다는 푸르른 초원이 달리거나 일상 속에서 비일상의 균열을 느끼고 글로 옮겨내는 것. 이것이 내게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세븐스타 나무로 향하는 길-2015년 6월 7일. 


내가 현실을 떠난 이유


 '세븐스타 나무'는 일본의 국민담배인 '세븐스타'의 껍데기에 새겨지게 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초록빛 고원 위에 우둑히 선 짙푸른 나무는 일본인들에게 초록빛 노스텔지어를 심어주었고 아스파라거스 밭에 그냥 심어져있던 나무는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어 한낱 시골에 불과하였던 비에이를 유명관광지로 이끌어주었다. 동네 자체가 작고 호텔보다는 일본식 펜션이나 민숙이 발달한 이곳은 주말만 되면 예약을 잡기가 까다로운 동네가 되었다. 


 조금씩 '세븐스타 나무'에 가까이 갈 수록 차량 통행량이 늘어가는 모습이었다. 10시가 가까워지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곳에 다가와 연인 혹은 가족들과 드라이브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특히 차도 적으면서 적절한 다운힐 코스와 업힐 코스가 조성되어 있는 이곳은 드리이브를 즐기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최적의 코스가 아니었나 싶다. 나 역시도 메끄럽게 펴진 아스팔트길과 광활한 공원은 자유를 누리기엔 최고의 코스였다. 


 두번의 삼거리를 지나자 세븐스타 나무를 향하는 분기점이 나왔다. 바로 천문대가 있는 한 건물이었다. 이곳에서 좌회전을 하면 '세븐스타 나무'가 나오는는 길로 빠지는데, 건물이 주변의 초원과 어우러져 목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너무나도 낭만스러운 공간같아 보였다. 특히나 우주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는 천문대를 들어갈지 말지 한 1분 정도 고민을 했지만 왜인지 내가 들어가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그리고 입구에 학교 이름이 써있는 것이 학교시설이자 일반인은 들어가면 안되는 곳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이내 곧장 세븐스타 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호쿠에이 밀의 언덕(이것이 공식 명칭으로 되어있다)-2015년 6월 7일. 


 경쾌한 체인의 마찰음, 시원한 바람,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전날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을 취했을 때 엄청나게 덥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홋카이도 내륙은 더위 따위는 언제 올지 모른다는 듯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물론 햇빛 한 점 없는 흐린날씨가 계속되고 있었고 심지어 전날에는 비까지 내렸다.―일본여행을 하면서 비를 맞지 않은건 25살 처음으로 일본에 방문하였을 때 였다. 그 외에는 항상 비와 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를 몰고 다니는 사나이도 아니고...―물론 추위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선선한 바람과 아름다운 풍경은 '이곳에서 눌러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는 이미 한국에서 터전을 잡고 있고 한국을 떠나서는 더 이상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없는 시기에 들어섰다. 만약 내가 20대 초반 다른 목표를 정했다면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 다른 세계였을 수도 있지만 그 당시의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고 주변과 괴리된 채 조그마하게 빛이 스며드는 암실과 같은 삶을 살았기에 그런 기회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여기서 잠시 내 삶으로 돌아와 보면 진짜 꿈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었다. 지금의 업을 택한 것 역시 단순히 '내가 이거라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종의 틈새공략을 통해 이 업계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이 분야에 열정과 꿈을 가지고 살아 온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사람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이들은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공모전을 내고 학점관리를 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나는 그냥 현재의 시장에서 찾을 수 있는 블로그 툴 좀 다루고 그런 글 좀 쓸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냥 간단한 기술만 익혀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내 자신의 마이너스에 대해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었다. 방황하는 삶 속에서 취업조차 늦게 하였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패배의식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 세상에 날고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나의 재능은 정말 한 없이 보잘 것 없어 보였다. 그래도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불합리함이 생존의 욕구를 넘어서게 되었고 항상 머리 속에서는 일상과 비일상의 괴리에서 느껴지는 자유를 찾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당시 직장의 대표님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었고 지금의 불합리함이 너무나도 싫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선물해줘도 매번 비난의 대상이 되고 직원들 앞에서 대놓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물론 주변의 직원들과의 관계는 그럭저럭 괜찮아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그걸로만 버티기에는 내 인내심의 한계가 극심해졌다. 물론 혹자는 '그냥 버티지 그랬어~'라고 하겠지만 당시의 내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저 더 큰 바다로 항해를 떠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저 나는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다...그저...-2015년 6월 7일, 비에이. 


세븐스타 나무


  수 많은 생각들이 공존하던 가운데, 어느덧 '세븐스타 나무'에 도착하였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풍광을 조망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차량들이 주차가 되어 있었고 대부분은 나이먹은 부부나 혼자 온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곳이 그저 초원만 펼쳐진 언덕에 불과하다보니 화려한 나날을 보내고 싶은 젊은 커플들에게는 어울릴 만한 곳은 아닌가보다. 삶에 있어서 자신의 부인 또는 남편과 아름다운 추억을 쌓기 위해, 또는 나와 같이 어두운 삶의 터널 속에서 조금이라도 빛을 찾고자 이곳에 찾아온 사람들일게 분명하였다. 


 정신 없이 달려왔더니 다시 목이 마르기 시작하였다. 다시금 준비한 이온음료를 한모금 마신 뒤, 남은 술기운을 지우기 위하여 자판기에서 에너지 드링크를 뽑아 마셨다. 그리고 한켠에 마련된 전망대로 향하였다. 자전거에 열쇠를 채워 뒷바퀴를 잠그고―일본에서 판매되는 자전거 대부분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뒷 브레이크 있는 곳에 열쇠가 채워져 있고 그것을 한쪽으로 돌리면 뒷바퀴에 잠금장치가 잠겨 자전거가 주행할 수 없는 형태였다. 누가 만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머리 좋은 녀석이다.―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걸친 뒤 천천히 걸어가자 푸른 내음이 느껴지는 풀밭이 내 눈 앞에서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먼지도 별로 없는 상쾌한 풀내음, 도시의 매쾌한 먼지를 마시다 일상에서 도망나와 마시는 신선한 공기는 나를 정화시켜주는 느낌이었다. 전망대에 다가가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즐기며 사진을 찍고 있었고 모두들 일상에서 느낀 피로를 모두 잊은 느낌이었다. 이들도 목가적인 일요일이 지나고 나면 다시 전쟁터로 복귀할 터, 나는 당분간 그런 일상의 전쟁터에 복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조그마한 우월감이 느껴졌다. 


전망대 맞은편에서 찍은 세븐스타 나무의 모습-2015년 6월 7일 비에이. 


이 넓은 녹음에 대하여, 솔직히 말해서 어떤 표현을 해야할지 몰랐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내 머리 속에만 담기에는 너무나도 아쉽게만 느껴졌다. 내가 꿈꾸던 목가적인 세계, 그 누구에게도 침범 받지 않는 나만의 순결함이 묻어나있는 세계. 나의 이 자유를 혼자서 느끼기엔 무언가 낭비처럼 느껴졌다. 나라는 존재, 그리고 내 자신이 살면서 느꼈던 수 많은 고통들과 우울함, 모두다 이 초원에 태워버리고 오고 싶었다. 이 자전거 체인의 마찰음과 함께. 


 어느덧 머리 속은 무욕을 향해 거칠게 달려갔다. 홋카이도에 도착한 이래 하루하루 현실과 이별을 고하던 나는 조금씩 하나 둘 씩 놓아둘 수 있게 되어갔다. 어설프게 가지고 있던 생활에 대한 집착도, 어설프게 가지고 있던 사랑에 대한 집착도...자전거가 1미터씩 전진할 때마다 한 개씩 바닥에 내려놓고, 한 장면 한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의 상처를 한 개씩 던져버리는 듯 하였다. 


삶, 영원한 전인미답의 세계. 


 조금씩 초연해져 갔다. 가슴 속에 불타고 있던 짝사랑에 대한 감정도 조금씩 사그라 들기 시작하였다. 그 보다도 지금 내가 즐기고 있는 이 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고 오늘 하루만큼은 꼭 행복하리라. 그리고 내가 늙어 기억이 사라지고, 삶의 종지부를 찍어 이 세상에서 존재가 사라지더라도, 이 때의 추억과 감상을 반드시 남겨서 '나'라는 개인의 기억이 아닌 '우리'라는 사람의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자전거가 전진하면 전진 할 수록 그런 마음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였다. 조금씩 머리 속에 두었던 짐들이 하나하나 희석이 되어가며 소중한 기억들이 층을 이루며 쌓아가고 있었다. 내가 처음 도쿄에 갔을 때, 그리고 내가 처음 혼자 열차를 타고서 부산에 갔을 때, 항상 마음 속에 큰 짐들이 있었고 그 큰 짐들을 내려놓고 왔던 기억들이 파노라마 처럼 스쳐지나갔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평균대 위에서, 비틀 비틀 거리며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 그 소중한 추억들이 조금씩 현재가 아닌 완전한 과거가 되고 과거 안에서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이 순간 순간을 담기 위하여 좋은 그림이 있다면 카메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것을 기록으로 남겨 내가 잊을 때마다 한번씩 돌아보면서 기억을 복기 하고 또 다른 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븐스타 나무-2015년 6월 7일, 비에이 


 다시 자전거를 향해 걸어갔다. 세븐스타 나무를 떠나 다음 행선지인 '오야코의 나무'를 향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시간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냥 내가 어딘가를 향해 무한히 떠나간다는 것. 시간이라는 영원한 여행 안에서 조그마한 행복을 찾아간다는 것. 그리고 내가 다시 웃을 수 있고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에 소중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열쇠를 풀고 자전거에 올라 타 '전인미답의 세계'로 무한한 여행을 시작하였다. 


인연이라는 것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횟수가 많이 줄어든 느낌이었다. 내리막길이 늘자 관성으로 운행하는 횟수가 늘어난 것이다. 거기다 사전에 전동자전거의 전동모드를 자주 사용하게 되면 배터리가 급속하게 방전이 되 결국 나중에는 자력(自力)으로 운전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익히고 왔기 때문에 아주 심한 언덕이 아닌 이상은 거의 관성을 이용하여 자전거를 운행하였다. 중요한 것은 이 때 거의 한시간을 운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 배터리 양은 아직도 한칸도 달지 않았던 상태였다. 자동차 운전을 이렇게 했으면 정말 '베스트 에코드라이버'이리라. 


 내려갔다 올라갔다 너무나도 즐거운 코스였다. 지루함이라고는 한 1g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가끔씩 차들도 지나갔는데 한국에서는 그냥 살짝 피해갈 수준으로 자전거를 추월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곳은 아예 나를 차로 생각하는지 차선을 넘어서 추월을 하는 장면들이 보였다. 조금은 새로운 모습이었는데, 나도 운전할 때 피해가는 수준으로 추월을 했던 것을 생각해보니 조금은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달리는 것은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달릴 뿐이었다. 이 기세라면 이 자전거를 타고서 아사히카와까지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물론 실행에 옮길 시 나는 위약금도 물어야하고 자전거 보상금도 물어야 했다.―내 눈에 펼쳐진 이국의 풍경이 너무나도 멋져 지금 내가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달려가고 있었다. 표지판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호쾌하게 페달을 밟으며 달려갔더니 이게 무슨일인가....다시 천문대가 있는 곳이 나와버렸다. 


여기를 돌 때만해도 나는 아무생각 없었다.-2015년 6월 7일 


 분명 가다가 표지판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전혀 보지를 못하였다. 아무리 쌩쌩 달리더라도 그 정도는 보일 줄 알았는데....그래서 결국 다시 왔던길을 돌아가기로 하였다. 속도를 조금 줄여 천천히 달려나갔다. 좌회전과 우회전을 하라는 그 표지판, 그 녀석을 찾기 위해 달렸다. 그런데 달리고 나니 다시 내가 처음에 좌회전을 했던 자리가 아니던가! 이대로 한 곳을 포기할지 아니면 다시 돌아볼지. 흡사 뫼비우스 띠의 함정에 빠진 듯하였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거 다시 가보자 하면서 다시 U턴을 하였다. 영화 <트루먼쇼>에서 짐캐리가 원형교차를 미친 듯이 돌았던 장면이 생각이 나는 상황이었다. 아까보다 속도를 더 줄여 다가가갔다. 가다보니 정말 나무 속에 파묻히기 직전에 표지판을 하나 발견하였다. 크기도 그렇게 크지 않았고 정말 천천히 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로 발견 못할 크기였다. 나름 포인트라고 적어둔건 맞는 것 같았는데....아담한 시골길에 인적도 없는 곳에서 너무 큰걸 바랬나보다. 


 그 곳에서 차가 오는지 안오는지 본 뒤 우회전을 하여 오야코의 나무로 향하였다. 이 코스는 생각보다 경사가 있는 편에 정상까지 쭉 오르막길이라 전동자전거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힘이 부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내리막이 보이자마자 미친듯이 밟을려고 하는 찰나....무언가 내 시야 끝에서 나무가 하나 지나쳐갔다. 설마 '오야코의 나무'인가? 


 참고로 오야코의 나무는 세그루의 떡갈나무가 아버지와 아들같아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 나무는 가까이서 보는 것 보다 멀리서 보는 것이 예쁘다고 한다. 그것을 떠나서 전혀 길 같지도 않은 곳이었다보니 그냥 스쳐지나가버린 것이다. 잠깐 자전거를 멈추고 지도를 보면서 맞춰봤지만 이게 오야코의 나무가 맞는지 의심이 가는 상황이었다. 


혹시나 해서 사진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확인결과 맞았다.-2015년 6월 7일, 비에이.


 다른 나무와 달리 안내판도 없었고 딱히 표시된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또한 저 길로 올라가는 것 역시 두려움이 앞섰다. 혹시 갔다가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스며들던 그때 갑자기 차 한대가 내 눈 앞에 멈췄다. 나는 즉시 경계태세를 갖추고 가만히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가족단위로 온 여행객들이었다. 나는 곧장 경계태세를 풀고 살며시 다가갔다. 


"죄송한데요~~!"

"아, 네"

"저게 혹시 오야코의 나무 맞나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하하"

"아 죄송했습니다~."

"저도 죄송합니다~"


 그래 진심으로 미안했다. 내가 본게 '오야코의 나무'가 맞았다는 사실을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그랬으면 이 사람들도 쉽게 구경하고 갔겠지....애시당초 아무런 표지판 조차 없던 것을 탓해야 하는 것인지. 누가 죄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친절하게 대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 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일본에 가서 사람들이 나에게 길을 물어본게 이번 뿐만은 아니었다. 2009년 도쿄에서 한 백인이 일본국립박물관 가는 길을 묻기도 하였고 2014년에는 교토에서, 심지어 일본사람이 나에게 길을 물어와 나도 여행객이라 잘 모른다고 하였다. 거기다 교토에서는 어떤 아름다운 여성분께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여 흔쾌히 사진을 찍어준 적도 있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자전거 몰고 가는 것이 현지인 처럼 보였나 길을 묻는 것이었다. 다음에 갈 때에는 아무래도 지도를 외우고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찌보면 이러한 소소한 일 하나하나가 인연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는데 말을 통하고 서로 이야기 한다는 것 자체가 나아가 좋은 인연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조그마한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 동안 내가 너무 폐쇄적이고 남들하고 말을 잘 섞는 성격이 아니다보니 쉽게 친해지기 어려웠고 여행지를 가더라도 누군가와 반갑게 이야기 하기 보다는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즐겼다. 어쩌면 또 다른 곳에서 저들을 만날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나름의 조그마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또 눈 앞에서 목적지를 놓쳐버린 채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이국의 풍경은 여행지의 노스텔지어를 극대화 시킨다.-2015년 6월 7일, 비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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