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고요한 시골의 아침. (숙소-비에이마을-비에이역)


 어김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분명 전날에 7시에 일어나고자 술을 마시고 잠을 들었는데 그런 것과 상관없이 홋카이도의 이른 태양과 여행에 대한 설레임은 나를 빠른 시간 안에 깨우고 빨리 여행에 나갈 것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아침식사는 분명 7시에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이고 무려 2시간동안 할게 없는 상황이었다. 잠이나 더 잘까 싶었지만 이미 밝아진 창 밖은 나를 절대로 잠들지 못하게 하였다. 


 결국 가이드북과 오늘의 일정을 점검하면서 다시금 시간을 체크하고 아무생각없이 티비를 보았다. 아침뉴스도 따분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들 뿐, 더군다나 이 시골에서 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싶었다. 그저 멍때리며 티비만 지켜보다 샤워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느낀 일본의 접객 문화


 사실 나는 수차례의 일본여행에서 항상 단독실이 있는 호텔에서 묶어 왔기 때문에 민숙[각주:1]같은 곳이 익숙치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개인의 사생활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남과 섞여 자거나 화장실을 공용으로 쓰는 일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 비에이 유일의 호텔은 이미 예약이 완료되어있던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공용시설이 있는 곳을 사용할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바로 '코에루'라는 식당 겸 숙박업소였는데 예약을 하게 된 이유는 방이 깔끔하고 넓어보여 예약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코에루'는 1층에는 식당, 2층에는 숙박시설로 되어있는데 대문 같은 경우도 일반 가정집 같이 생겨서 이게 맞나 몇번이고 확인을 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숙박의 경우 1층에서 신발을 벗은 뒤 2층으로 들어가는 형식이었는데 2층의 구조는 가정집에 달린 민박과 다를 바 없는 구조였다. 공용욕실과 공용화장실이 있었고 통로 중앙에는 만화책 등을 빌려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공용냉장고에 필요한 것들을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다만 일반적인 가정집과 같은 방구조이다보니 방음이 매우 부족했는데 다음날 아침 옆방 중국인들의 대화소리로 인하여 잠시간의 사색이 큰 방해가 되었다. 


 대충 조용해졌다고 생각한 나는 샤워를 하기 위하여 샤워실로 향하였다. 내부에는 대중목욕탕의 옷갈아 입는 곳 처럼 옷을 놓을 수 있는 바구니와 함께 간단한 세면대 그리고 드라이기 등이 설치되어 있었고 욕실 내부는 그동안 애니나 일본 드라마에서 많이 봐왔던 형식으로 간이의자와 샤워기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1미터 높이의 턱이었다. 


 일단 평상시 처럼 샤워를 하였다. 다만 샤워기 받침대가 높지 않아 어렸을 때 구형 주택에서 살단 시절 처럼 의자에 앉아 쪼그려서 샤워를 하였다. 깔끔하게 샤워를 하고 난 뒤 정체를 알 수 없는 1미터 높이의 턱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하였다. 왠지 덮개 같은 것이 아닌가 싶어 젖혀봤더니 다름 아닌 욕탕이었던 것이다. 욕탕에는 따뜻한 물이 가득차 있었고 그 누구도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바로 그 때야 이것이 일본의 손님을 배려하는 문화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일본에서는 집에 손님이 오면 항상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덮개로 덮어 둔 뒤 손님이 그 안에 들어가 목욕을 즐기고 그 후에 가족들이 그 물에 들어가 목욕을 즐기는 전통이 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손님이 사용한 물은 절대로 버리지 말아야 하는데 물 하나를 두고서 여럿이 돌려쓰는 문화 때문인 것이다. 아마 그날은 전부 외국인들이 묵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조차도 샤워를 마친 뒤에야 깨달았으니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뚜껑을 열고서 잠깐 있다가 나오고 싶었지만 다음 사람을 생각하여 정리를 하고 빠져나왔다. 


맛있었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여차저차 하다보니 어느새 식사시간이 되었다. 전날에 이야기 해둔 식사시간이 있기에 대충 채비를 하고 난 뒤 식사를 하였다. 식사는 전형적인 일본의 가정식이었다. 밥과 미소시루 그리고 연어구이와 낫토, 계란후라이 등이 나왔다. 밥 위에 낫토를 얹어 연어구이와 계란구이를 먹으며 무언가 손님으로서 제대로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주인 아주머니도 상당히 친절하시고 집밥과 같은 느낌에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식사를 마친 후 잘먹었습니다라는 한마디와 함께 식기를 반납하고 다시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래봐야 시간은 7시 30분, 내가 알기로 자전거 빌리는 곳의 개점시간은 9시 역시 1시간반 동안 마땅히 할게 없었다. 그렇다고 방에서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냥 바깥 바람이나 쐬고 싶어서 8시 30분쯤에 숙소를 빠져나오기로 하였다.


 짐을 모두 챙겨 1층 식당으로 내려와 체크 아웃을 하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안보이고 숙박하는 일본인 여행객으로 추정되는 이가 있었다. 몇번이고 불러봤지만 식사 중이신지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그냥 느긋하게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는데 갑자기 일본인이 도와주면서 마스터를 외치며 조금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식사 중이기라도 하면 어쩔려고....


 참고로 이곳 '코에루'는 후불 결제인데 그냥 나가버리면 나는 천하의 도망자가 되어버리므로 반드시 주인과 만나 돈을 건내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나는 시간이 많아 느긋하게 나오셔도 되는데 이내 주인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아 미안하여라...일단 미안하다고 말씀 하시는데 그냥 괜찮다고 말씀 드렸다. 아무리 내가 성격 급한 사람이어도 남 식사하는 것 까지 방해하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다. 


 숙박비를 지불하고 따뜻한 감성이 남아있는 숙소를 나서려고 하자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오늘 후라노로 넘어가시나요?"

"아니오, 오늘 오전에는 자전거를 탄 뒤 오후에 왓카나이로 넘어가요."

"그렇군요, 몸 조심하시고요. 다음에 또 뵈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다음에 또 뵈요라니, 이 얼마나 가슴 따뜻한 말인가!


 숙소를 나와 적막한 비에이역을 오른쪽에 두고 육교로 걸어나갔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몰라도 날씨가 매우 쌀쌀해서 자전거를 제대로 탈 수 있을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빡빡하고 바쁜 길을 재촉하던 도시와 달리 분명 이곳은 고요하고 조용한 산골마을에 불과하였다. 비록 내가 도시를 사랑하지만 매연에 찌들고 무표정한 도시민들의 빠른 발걸음이 사라진 세계는 혼탁해진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듯한 감각이었다. 


-비에이역의 뒷편, 2015년 6월 7일. 


 어제 지나왔던 육교를 건너 다시 비에이 역에 도착하였다. 몇몇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지만 택시기사들도 편하게 잡담을 나눌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아직 관광안내센터도 자전거 대여소도 문을 열지 않은 가운데 비에이역의 대합실에 앉아 잠깐 이국의 풍경을 즐기기로 하였다. 


 확실히 낮이 되자 지난 저녁에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어느 곳에 가던 마찬가지이지만 밤이 되면 도시는 민낯을 감추고 예쁘게 화장을 한다. 그 예쁜 화장아래 가려진 수 많은 피부 트러블 마냥 도시의 불빛은 춤을 추고 그 어느 곳보다 가혹한 곳이 된다. 그리고 해가 밝으면 아무일 없듯 다시 민낯을 내밀고 나를 반겨준다. 그런데 이 예쁜 화장은 민낯의 아주 예쁜 매력적인 요소조차 가려버려 되려 소박한 매력을 가진 곳에서는 무미건조하고 평범한 여자아이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바로 비에이 역이 그런 모습이었다. 


 대합실 문부터가 상당히 오랜시간이 지난 듯한 모습이었다. 문 오른쪽 뒷편에는 도르래를 달아 문을 열고 들어간 뒤 자동으로 닫히도록 조정해놨고 어딘가 모르게 오래되보이는 대합실 내부는 어렸을 적 기차역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같아 보였다. 맞은편 벽에는 지역축제 소식과 함께 콘사도레 삿포로, 닛폰햄 파이터스의 경기 소식이 있었고 후라노선의 명물인 노롯코 열차의 시간표가 있었다. 


-시골 간이역의 향기가 남아 있는 그곳, 비에이역 2015년 6월 7일. 


 대형 터미널과 역이 서로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만나고 이별을 하고 또 다시 사랑을 하고 각자의 목적을 따라 인간의 희노애락이 모두 녹아 있는 곳이라면 작은 기차역은 평범한 일상에 불과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마음 속에 평화가 가득해지기 시작하였다. 분명 어제만해도 짝사랑에 대한 감각으로 인해 마음이 어딘가 모르게 심란하게 느껴졌었는데 어쩌다가 사람이 한두명 정도 지나가고 열차도 한시간 간격으로 지나가는 곳은 이곳은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였다. 하루하루 꿈꾸는 것 같은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내 자전거 대여소가 열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9시가 되자 비에이에도 활력이 돌기 시작하였다. 닫았던 상점들이 다시 셔터를 올리기 시작하였고 관광객들도 조금씩 밖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는 순간이었다. 도시에서의 아침이 이른시각 시작되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면 비에이라는 곳은 도시보다 다소 늦은 시간에 생활이 시작되어 평화와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안식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밤에 마땅히 할 것이 없어 이 자그마한 마을을 속에서 비난하였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고요한 아침의 마을 비에이, 마음이 심란하다면 꼭 들려보길 바란다. 2015년 6월 7일. 


12.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 '여행의 기술'을 보면 알랭 드 보통과 그의 친구가 엽서 속 사진에 있는 바베이도스의 아름다운 풍광에 옥빛 바다에 반해 여행길에 나서는 이야기가 나온다. 칙칙한 구름과 우중충한 건물들로 덮힌 런던을 벗어나고 싶었던 욕구가 있던 그에게 시원한 바다와 활짝 열린 야자수, 그리고 두터운 입술과 갈색피부를 가진 미녀들은 일상에 대한 탈출구였음이 분명하다. 이국의 이국적 풍광이 여행에서 느껴지는 자유를 자극하는 요소이고 그 장소에 던져졌을 때 비일상적 요소를 통해 일상과 유리가 되고 한 여름의 신기루 처럼 환각을 주어 현실과 이질감을 느끼게 함으로서 짧은 낭만을 주리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그는 약 120여년전의 소설가 위스망스[각주:2]에 대입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위스망스는 런던의 아름다운 그림에 반해 여행에 나서려 했지만 런던의 분위기를 대신 느낄 수 있는 한 카페에 가자 굳이 파리에서 바다를 건너 파리에 갈 이유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이내 여행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와는 좀 다르지만 알랭 드 보통과 그의 친구는 막상 도착해서 보니 실망을 감추지 못하였다. 호텔에 도착하여 보니 옥색 바다와 푸른 야자수가 있긴 했지만 생각보다 예쁘지 않았고 갈색 미녀들이 보이지 않았다. 예쁜 사진에 넘어가 너무 큰 기대치를 가져버린 나머지 막상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기대 이하의 모습에 그냥 호텔에 처박혀 그 자리에 남아버렸던 것이다. 


-단선철도와 협궤의 추억이 소복히 쌓인듯한 후라노선의 모습. 2015년 6월 7일. 


무지개빛 노스텔지어 


 알랭 드 보통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내가 비에이와 후라노의 사진 한장에 반해버려서 비에이에 왔기 때문이다. 홋카이도에 있는 대략적인 주요 도시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가이드북을 구입하며 지도와 대조하며 보던 중 예쁜 오색 빛의 라벤다와 초록빛 향기가 물씬 풍겨오는 들판의 사진이 내 머리 속을 흔들면서 이 아름다운 장면을 내 기억과 내 사진기에 넣어 나중에 내 마음속의 그녀에게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맙소사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니!!!'


 사진 속의 비에이와 후라노는 제주도와 태국 파타야에서 봤던 차밭보다 훨씬 예쁘고 색체가 다채로웠으며 그 어느곳보다 목가적이게 느껴지는 것이 반드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베이도스의 옥색 풍광이 알랭 드 보통의 여로를 열었듯이 가이드북에 있는 사진 한장이 나를 이 작은 도시로 이끌게 되었던 것이다. 행여나라도 실망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세상에서는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있어 검증하는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는 이들도 사진을 정말 잘 찍기 때문에 도착하여 다음날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지울 수는 없었다.


-비에이의 작은 건널목 앞에서, 작고 소박한 마을 만큼이나 건너 동네로 가는 건널목도 작았다. 2015년 6월 7일 비에이. 


 사실 당초에는 아사히카와에서 일박을 하고 여기저기 거닐다가 오후에 왓카나이로 넘어가는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사히카와가 생각보다 즐길거리가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과 함께 숙박시설도 썩 많은 편이 아니라는 점을 조사를 하면서 알게되었다. 어디서 지내야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가이드북에 나온 사진 한장의 충격은 나를 이 작은 마을로 이끌었고 이미 마음은 푸른 하늘 아래에서 날개를 펼친 새한마리와 같았다. 


 참고로 보통은 아사히카와를 거쳐 비에이를 들어온 뒤 비에이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후라노로 넘어가 숙박을 한 뒤 비바우시와 후라노를 즐긴 후 후라노에서 삿포로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그 역으로 도는 경우가 많은데 나같은 경우 7박 8일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인하여 일정자체가 워낙 빡빡하게 구성이 되어있던 관계로 후라노를 포기하고 비에이에서 숙박을 한 뒤 비에이에서 곧장 왓카나이로 넘어가는 일정을 계획하였다. 물론 후라노도 충분히 예쁜 곳이지만 후라노보다도 비에이가 어딘가 모르게 더 끌렸던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그 날아가는 새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편에서...


-혹자는 이 적막한 풍경이 너무나도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밤문화를 사랑하는 그대라면 말이다. 2015년 6월 7일 비에이 시내. 




  1. 한국의 민박이나 여인숙과 비슷한 개념 [본문으로]
  2. 1848~1907, 파리 출신 초월주의 소설가로 대표작으로는 피안과 마타르 자매가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석유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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